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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양원태]를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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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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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지만, 1987년 12월16일 대통령 선거일에 서울 구로갑구 선거관리위원회쪽이 부정투표함으로 보이는 상자를 식빵상자에 감춰 밀반출하려다 한 시민에게 들킨 사건이 있었다. 시민들은 곧 선관위 사무실로 몰려가 부정투표의 흔적을 대거 찾아냈고, 문제가 된 투표함의 공개 개봉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른바 ‘구로항쟁’의 시작이었다. 이틀 뒤인 18일 이른 아침, 경찰은 4천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했다. 2시간여 만에 1034명이 연행됐고, 그 중 208명이 구속됐다. 진압 과정에서 부상자도 속출했다. 양원태(39·당시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씨는 그날 구로구청 5층 옥상에서 떨어졌다.

벌써 16년도 넘은 오래 전 이야기다. 그러나 한번 다친 양씨의 몸은 회복되지 못했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돼 지금도 휠체어에 의지하고 산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곧 힘이 부친다. 삶이 안정되고 평탄할 리도 없다. 그는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다 90년대 초반에는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기도 했고, 회사에도 다녀보았다. 하지만 아픈 몸이 늘 그를 괴롭혔다.

그런 그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올벼’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낸 것이다. <거꾸로 경제학자들의 바로 경제학>이란 제목의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쓴, 애덤 스미드에서 밀턴 프리드먼까지 11명의 경제학자의 삶과 핵심이론을 담은 것이다. ‘요술피리’라는 저자명은 다름 아닌 양원태씨와 동료 2명의 공동작품임을 나타낸다. 그는 다음에는 ‘국회’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물론 앞으로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인문사회·교양 서적을 계속 낼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고, 그 선택이 부른 불가피한 일(몸을 다친 일)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때 다짐하고 애쓰던 마음을 지금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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