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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절대안전’이라는 위험/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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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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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일본 세이케이대학 교수 · 정치사회학
‘이라크에 자위대 파견’이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 보도된 일본 신문에서 만날 수 있는 관료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닌 것은 사회 전체에 감도는 어떤 압박감 때문인 것 같다.

엄연히 군대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강한 만큼, 이곳 일본에서도 몇몇 여론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 규정에 의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자위대와 군대를 엄격히 구별하는 경향이 있던 몇년 전과 달리, 지금은 일부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자위대가 군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군대라는 것을 전제로 이번 파병을 논하는 점이 주의를 끈다.

일본 외교관 살해가 준 충격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정된 한국과 일본의 이라크 파병.
이라크 자위대 파견을 둘러싼 찬반에 대해서는 전쟁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로 찬성과 반대의 세대간 차이나 한-일간 차이를 논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문제는 찬성과 반대의 비율이 아니라 어떻게 반대하느냐, 왜 찬성하느냐일 것 같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부분도 이라크 파병에 반대 의견을 보였다.


학생들의 의견은 일-미 동맹관계 유지와 관련해 상대적 독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언제까지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가, 일본의 자주적 외교노선은 없는가, 일본의 진정한 국익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한 축을 이룬다. 특이한 것은 학생들 대부분이 그 무엇보다도 이라크에서 살해된 일본 외교관 두명의 죽음을 아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점이다.

강의실 등에서 만난 일본 학생들과 평범한 일본 사람들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라크에서 일본인 외교관 2명이 살해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의 이라크 자위대 파견 반대 움직임이 급격히 늘었다. 이라크에는 최근 미군을 표적으로 한 테러가 다발하여 치안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처럼 위험한 장소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위대원 가족들은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 살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이처럼 국민들이 자위대 파견에 반대했을 것인가. 일본은 위기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테러의 표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나는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지만, 살해된 두 사람의 뜻을 살려 이라크를 빨리 복구해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명이 희생된 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라크 복구를 도와야 할 것이 아닌가. 군대를 파견할 것이 아니라 의료나 식량원조를 통한 비교적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군대에 위험한 일을 맡긴 채 일본은 안전한 일만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는 다른 나라의 병사와 비교해볼 때 일본인은 살아서 자금지원만 하는 것은 비겁하지 않는가.”

“안전한 일본과 달리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장소,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소에 군대를 파견하면 안 된다.”

절대안전이라는 보험에 든 사회

찬성이든 반대든 간에 이같은 의견에서 느껴지는 것은, 물질이나 말만이 아니라 몸으로 때워야 진짜라는 사람들의 소박한 경험주의에까지 알게 모르게 침투해 생각의 의미와 방향까지 전도하는 ‘절대안전’이라는 보험장치다.

어느 새인가 길거리, 아파트 할 것 없이 많은 세금을 쓰면서까지 늘어가는 감시형 모니터 카메라에서, 전례가 없다는 이라크에 취재하러 가는 일본 보도진에 대한 자위대의 ‘체험훈련’에 이르기까지, 밖으로는 전쟁을 지원하면서 안에서는 그 상황을 재현, 연습하는 ‘절대안전’이라는 보험에 든 사회. 이 안에서 저항하는 방법은 보험에 들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지혜를 배우는 것. 이것이 곧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길과 통함을 아는 일일 것이다.

‘되도록 피해야 할 위험’과 ‘반드시 감수해야 할 위험’은 서로 엄격히 다르다는 것을 같이 고민하며 공유하는 일이 나와 학생들의 저항 방법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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