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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야생화 훔쳐가지 맙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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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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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의 산야는 과연 무주공산인가… 제대로 된 식물관리 시급하다

(사진/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는 강원도 인제·양양 점봉산의 금강초롱)
얼마 전 서울의 한 수목원에서 어렵게 키워 가꾸어 놓은 금강초롱을 일반인들이 하나둘 캐어가 자꾸만 없어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항상 염려하고 안타깝던 일을 막상 신문지면에서 접하니 새삼스레 화가 났다. 식물과 관련이 크게 없던 일반인들도 놀라웠던지 여기저기서 뒷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이 일은 식물을 조사하고 증식하고 또 심고 가꾸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수목원에는 정말 보전해야 하는 식물들, 그중에서도 금강초롱처럼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거나 삼지구엽초(일반적으로 음양곽이라 부른다)처럼 약용식물로 소문이 나 있는 식물들은 아예 일반인 출입제한 구역이나 찾아보기도 어려운 곳에 마치 잡초처럼 심어 놓는다. 특별히 관리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그래야만 그 탐욕스런 손길들에서 식물들을 지켜낼 수 있다.

유명한 식물을 잡초처럼 심는 이유


(사진/하늘매발톱)
금강초롱과 함께 장뇌삼도 도난당했다. 장뇌삼은 우리 연구원 동료연구자도 비슷한 도난 사건을 겪었다. 이 연구원은 장뇌삼이 어떠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지 연구하기 위해 심어 놓았다가 도난당하는 바람에 연구에 큰 지장을 받았다. 당시 서울 경동시장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산삼이 많이 거래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보면, 장뇌삼을 산삼으로 알고 누가 캐어가 속이고 판 게 아닌가 짐작된다. 이런 경우에는 장뇌삼을 산삼으로 속아서 산 사람들이나, 동료에게조차 연구실험 지역을 비밀로 해가며 혼자 어렵게 연구를 하던 연구자에게나 참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식물, 특히 희귀한 식물들을 찾아내고 보전하는 데 관심을 두는 사람들끼리는 불문율이 있다. 찾아낸 자생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간해서는 가까운 사람끼리도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예전에 본의 아니게 이땅에서 사라져가는 식물들을 찾아내 기쁜 마음에 언론에 소개했다가 식물들을 잃어버린 사례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화장품 광고에 희귀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을 차례로 등장시킨 일이 있다. 그때도 금강초롱을 보여주었는데 촬영지를 비무장지대로 기록했다. 실제로 그 사진 자체는 강원도의 ㅅ산인데 구체적인 장소를 밝히면, 그 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 당장 달려가 캐어와 결국에는 없어질 것이 뻔한 일이므로 함부로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로 표기한 것이다. 비무장지대에도 금강초롱 자라는 곳이 있으니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위로하며.

주변에 평소 식물 보전을 역설하던 한분이 사람들에게 자생지를 알려줘 희귀식물이 도채되는 데 원인을 제공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소문이 들렸다. 진상을 알아보니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부탁을 받아 산행을 함께 했고 그 사람들과 가던 길에 만난 희귀식물들을 두고 정말 귀한 식물이니 잘 보존해야 한다고 설명을 한참 했는데, 며칠 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귀한 식물이라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보태어 자랑하며 몽땅 채집해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고란사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고란초를 만날 수 없고 아름다운 야생화인 금낭화의 대규모 군락지였던 ㅁ산의 골짜기에는 움푹 팬 삽자국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상업적인 용도로 채취되는 상황까지 알고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특별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생육할 수 없는 개불알꽃(복주머니란)의 그 붉고 아름다운 군락은 산촌사람들에게 소득을 준다며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촉당 얼마씩 가격을 주고 거둬들이는 바람에 이제 희귀식물이 되었다. 평소 이러한 우리 식물 지키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우리식물살리기 운동’에서 현장을 확인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백에 보전되어야 하는 지역에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던 날개하늘나리, 솔나리 같은 귀하고 값진 나리들이 모두 뽑혀 구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줄기만 쓰레기처럼 남겨져 처참한 현장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렇게 도채된 나리의 구근들은 어떤 농장에선가 키워져 팔려나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식물을 캐내는 데는 크게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산, 혹은 식물을 심어 놓은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 식물을 캐어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것과 같은 산림절도죄에 해당한다. 또 그 식물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종류일 경우에는 막강한 자연환경보전에 저촉을 받아 큰 벌을 받게 되어 있다.

외국으로 유출되는 우리 식물들

(사진/개불알꽃)
무주공산의 개념에서 산과 들의 식물들은 그저 이름 모를 잡초와 잡목들이던 시대가 이제는 아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식물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인가를 크게 인식하고 오래 전부터 자국의 식물보호는 물론 다른 나라의 식물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한 사례로 세계시장에서 가장 인기있게 팔리는 라일락 품종이 ‘미스킴’으로 우리나라 북한산에서 가져간 종자에서 나온 식물인데도 우리가 오히려 값비싼 로열티를 주고 역수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언급하기조차 새삼스럽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 혹은 미래에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어떻게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미래를 좌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식물을 제대로 관리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일임에도,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상황임에도 우리 국민들은 야생화를 사랑한다면서, 아름다운 꽃을 보면 캐어와 집안에 심어 두고 싶어 안달을 한다. 한때 변이종 난초수집으로 정상이 아닌 난초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더니, 이제 그 유행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고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우리 야생화를 심어 키우는 것으로 전이됐다. 우리꽃이 소중하다며 아끼자고 하면서도, 멀리 보고 제대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캐내어 서쪽으로 옮기면서도 가책을 받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사진/고란초)
일본 야생화 시장에서도 우리나라 야생화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경로로 팔아버린 식물들이다. 물론 식물을 수출하여 외화를 버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인기있는 우리나라 식물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변산바람꽃처럼 신종으로 발견된 지 얼마되지 않아 새로운 종류이거나 그 나라 식물과 비교해 특별히 상품으로 가치있어 보이지 않은 새우난이나 개불알꽃 혹은 노루귀 같은 식물들이다. 전자는 우리의 희귀한 식물이 도채되어 나가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은 당연하고, 후자의 경우도 이러한 식물들은 상품이 아닌 유전자원으로 이용되는 데 문제가 있다.

야생의 식물들은 표현되지 않은 풍부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병에 강한 것, 꽃이 큰 것, 꽃색이 화려한 것 등 무궁무진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우리의 야생을 원하는 것은 야생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그 무궁한 가능성을 사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풍부한 우리의 유전자원으로 우리가 상품성 있는 좋은 것들을 개발하여 동일한 규격의 상품으로 판다면 이것은 수출이지만 지금처럼 야생의 식물들이 그대로 나간다면 이것은 식물의 유출이 되는 것이다.

자연에서의 채취는 분명 ‘죄’다

(사진/솔나리)
정부도 이런 분야에 눈을 돌려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민간에서도 우리 식물을 제대로 알고, 살리고 보전하고 이용하자는 여러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지만 국가에서 설사 군대까지 동원해 온 산을 지킨들 훔쳐가려는 사람들의 손길을 다 막을 수는 없다. 비싼 값으로 특별한 것을 찾는 사람들의 기호를 대기 위한 식물 도채꾼들을 막기는 근본적으로 어렵다.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자연에서의 채취는 분명 죄이며 나아가 국가 식물자원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연에서의 풀 한 포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정치를 탓하고 범법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 꽃을 심기 위해서는 꽃시장에서 팬지와 장미를 사듯이 재배되어 상품이 된 것들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 값이 양심을 팔고 그곳에 찾아간 경비까지 합치면 훨씬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이런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도채의 손길이 아니더라도 우리 식물들은 오염, 개발, 자연조건의 변화 등 엄청난 위험 속에서 어렵게어렵게 생존하고 있다.

원고를 정리하며 있는데 ‘우리식물살리기 운동’에서 소식이 날아왔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좋아하는 꽃을 물으니 1위에서 10위까지 식물 중 무궁화 빼고는 모두 장미, 튤립, 백합과 같은 외국꽃이었단다. 그 현실이 안타까워, 어린이들이 우리 꽃을 제대로 보고 알 기회가 없어 그렇게 된 것이려니 싶어 전국의 초등학교에 우리꽃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받은 우리꽃을 아이들과 직접 심고 가꾸고 관찰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던 한 선생님이 너무나 아름답게 하늘매발톱꽃이 피었기에 반가워 다음날 반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함께 꽃밭에 나갔더니 하루 사이 누군가가 몽땅 캐내갔더라는 소식이다. 아이들의 마당에서 꽃을 훔쳐가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현실인데 이렇게 길게 식물을 함께 지키자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갑자기 허망해졌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박사·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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