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천 상류에 있는 항사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새벽에 저수지(오어지) 수문을 열어 피해가 커졌다고 지목했다. 최율호씨는 “저수지 수위가 높아져 수문을 부랴부랴 열어버리니까 한번에 물이 완전히 쏟아져버린 거지”라며 “거기에 폭우로 인한 강수량까지 있으니까 물이 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저수지 주변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삼수(66)씨는 저수지의 물넘이 구간을 넓힌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저수지가 꽉 차서 자연스레 물이 흐를 순 있어도 물넘이 구간이 지금보다 좁았으면 순차적으로 더 적은 양의 물이 흘렀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어지 앞에 있는 주차장도 피해를 키운 이유로 꼽힌다. 포항시는 오어지 둘레길에 관광객이 몰리자 차량 100대가량을 세울 수 있는 임시 주차장을 만들었다. 주차장이 조성된 공간은 저수지 물넘이 수로 바로 앞이었다. 물넘이를 넘어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물결에 주차장이 무너졌고, 토사가 최율호씨가 운영하는 풀빌라를 향해 직선으로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오어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는 저수지 수문이 피해가 커진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수지 물넘이 구간에 있던 방수문은 9월3일 오전부터 계속 열려 있었다고 농어촌공사는 밝혔다. 폭우에 대비해 한번에 많은 양의 물이 내려가지 않도록 미리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새벽 5~6시 저수율이 100%를 넘어가자, 물은 자연스럽게 하천으로 흘러 넘어갔다. 이때 포항에 시간당 내린 비의 양은 101㎜였다. 역대 포항에서 가장 많은 비를 동반한 태풍이 덮친 것은 1998년 ‘예니’였다. 당시 시간당 강수량은 93㎜였다.
이씨의 집 안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펄이 남아 있다.
오어지에서 시작한 신광천이 냉천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용산2리는 힌남노 태풍이 다가올 때 포항에서 가장 빠르게 침수 피해를 겪었다. 이곳엔 1144가구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기 전에 용산천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냉천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하지만 냉천과 마을 사이에 아파트 건설 공사를 하면서, 용산천은 건설 현장을 에둘러 흐르도록 90도 직각으로 꺾였다. 2017년 포항시는 아파트 건설이 예정된 부지 내에 있는 용산천 500m의 유로를 변경하는 내용의 소하천정비종합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용산2리 노인회장을 맡은 이종연씨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수로가 변경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포항시에 원상복구를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용산2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박선옥(85)씨는 지금껏 마을 전체가 잠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지금까지 재난은 없었어요. 아무리 사나운 매미 태풍이든 어떤 태풍이든 왔어도….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갑자기 물이 집채같이 넘어오는 기라.” 힌남노가 지나간 다음에도, 이 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용산천의 물길을 원래대로 복구해달라는 것이다. “천을 막아놓으면 해결이 안 돼. 자연을 난 대로 놔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100년이든 피해가 날 때마다 책임을 질 끼가.”
용산2리를 지나 하천 하류로 내려갈수록 태풍 당시 큰물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다. 하천이 꺾이는 지점은 더 깊게 파였고 높이가 낮거나 교각 사이가 넓지 않은 다리엔 아직도 치우지 못한 토사 등이 남아 있었다.
앞서 포항시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317억원을 들여 ‘냉천 고향의 강’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으로 포항시는 냉천 주변 수로를 정비하고 산책로와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축구장과 광장도 생겼다. 물길은 인위적으로 강폭 전체 길이의 30% 정도로 만들었다. 나머지 양옆 공간은 콘크리트로 덮였다.
지하 주차장에서 8명이 숨진 아파트가 위치한 구간의 냉천은 당초 ‘고향의 강’ 사업에서 제외돼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요청해 2021년 냉천 근처에 휴식공간과 산책로를 설치했다. 아파트 앞 냉천 구간도 ‘고향의 강’ 사업에 포함해달라고 건의했다는 황병건씨는 “만약 저 사업을 하지 않고 뒀으면 어땠을까”라며 말을 흐렸다. “물길이 가는 길을 건드릴 게 아니라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강을 변형시켜놨는데…. 결국 이렇게 넘치는 거야. 물을 다스리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2012년 경상북도가 발간한 ‘냉천하천기본계획 변경 보고서’를 보면 냉천 중하류 지역에 대해 “주거지 밀집 구간이며 좌우 안측에 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일부 구간 제방의 높이가 낮아 관리가 요구되는 지역”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1998년 냉천기본계획수립 이후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존 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고서는 냉천에 설치된 다리 9개 가운데 다시 설치하거나 철거해야 할 다리 5곳도 지목했다.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 주변에 충분한 여유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큰 피해를 본 아파트가 위치한 지점 너머의 하류에 있는 인덕교와 냉천교도 이 보고서에서 ‘개설’을 권고한 다리였다. 이 다리들은 아직 그대로 있다. 교각 사이 거리가 기준치에 가장 미달했던 잠수교만 힌남노가 지나간 뒤 급히 철거됐다. 장영태 포항시농민회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피해를 살펴보기 위해) 내려오기 전에 (포항시가) 잠수교라도 급히 철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쇳물을 만드는 고로가 멈추는 큰 피해를 본 포스코는 9월15일 “이번 제철소 침수 원인은 인근 냉천의 범람 때문”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냉천은 하류에서 제철소를 만나 물길이 크게 꺾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포항제철소 안에서 침수된 지역을 보면 냉천이 꺾이는 부분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반면 포항시는 이번 피해가 ‘천재지변’이라는 입장이다. 이삼우 포항시 생태하천과장은 “지방하천인 냉천은 80년 빈도 강우량까지는 홍수가 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며 “이번 태풍은 유례없이 500년 빈도의 강우가 왔기 때문에 범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냉천은 80년 빈도의 홍수에 맞춰 설계돼 한계수량이 시간당 78㎜ 정도에 불과했다.
정침귀 포항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모두가 ‘아전인수’ 격의 주장만을 한다고 했다. “결국엔 기후위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거야말로 중요한 문제고 그걸 지적해야 하는데, 어떤 언론매체들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한 ‘고향의 강’ 사업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해요. 이 재난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당장 내년 여름에 또 (태풍이) 올지 모르는데…”
환경단체들은 포항시의 잘못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도 포항 기후재난의 간접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7310만t(2018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한다. 환경단체들이 포스코를 ‘기후 빌런(악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천 전문가인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하천 관리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각 하천의 중요도에 맞게 관리해야 하는데, 지방하천은 무조건 80년 빈도 강우량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고착화돼 있다”며 “당장 전국 어디에서도 냉천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이 2020년 작성한 ‘한국기후변화평가보고서’를 보면 한반도의 집중호우 빈도와 강도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연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2014년 이후 단기간 강우 강도가 증가해 중소 하천에서 홍수 발생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기상과학원도 2020년 낸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모든 시나리오에서 미래 전반기에 강수량이 감소하는데도 ‘극한 강수’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기후위기 시대, 하천이 위험하다.
포항=글·사진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