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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초등학생에게도 ‘정치’는 정말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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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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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경기도 성남시 구미초등학교 6학년 이한준군

“얘 정말 ‘어린이’ 맞아?”

이한준(13)군에게는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얘기하는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존경하는 인물은 케네디인데요, 그 젊은 대통령의 뉴프런티어 정신이 맘에 들어요.”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기자는 본 적이 없다. 요즘 그 나이 또래의 학생이라면 유행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좋아하는 가수 얘기에 열을 올려야 어울린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군에게 <한겨레21>에 실린 정치, 사회 기사들에 대한 ‘논쟁적 문제제기’를 들으며 신기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를 아버지보다 열심히 읽는다는 이군의 어머니 전화를 받고, 혹여 ‘극성 어머니’의 과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군은 정말로 <한겨레21>의 열성독자이다. 하긴 시사주간지 구독자에 나이제한을 둔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이군이 <한겨레21>을 읽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이다. 원래 아버지가 구독할 요량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했으나 오히려 이군이 기사 하나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읽게 됐다. 최근 북파공작원을 다룬 ‘이슈추적’ 기사가 인상깊었다고 한다. 남파간첩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남한이 북한에 공작원을 잠입시켰다는 게 놀라웠단다. 잡지를 받으면 제일 먼저 보는 난은 ‘시사SF’이고, 문화면도 즐겨 읽는다. <한겨레21>에서 꼭 다뤄줬으면 하는 기사는 초등학생들의 학원문제이다. “5학년 정도만 돼도 전 과목 학원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들이 늘어가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다”고 어른스럽게 걱정한다.

나라를 발전시킬 비전있는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인 이군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역사나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모님과는 달리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그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자주 정치 현안에 대해 토론할 정도이다. 사회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시사잡지를 읽고 있다. 정치가의 꿈을 키우는 만큼 학생회 활동에 침묵할 수도 없다. 구미초등학교에서 그는 지금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5학년부터 총학생회장 후보로 입후보할 수 있는데, 그는 5학년1학기, 2학기, 6학년1학기까지 내리 3번 입후보하여 모두 ‘미역국’을 먹었다. 집에서는 이군이 너무 실망할까봐 6학년2학기에는 입후보를 말리기도 했으나 결심을 굳히지 않고 입후보해 당선됐다. 선거전략도 직접 짜고 연설문도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 “친구들과 제가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설득을 했어요. 제가 학생회장을 하고 나서는 그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헤어질 때 이군은 자신의 이름을 곱게 적은 책 한권을 내밀었다. 97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써온 일기를 모은 <오늘 나의 일기는 특급비밀이다>라는 책이다. 물론 ‘그답게’ 검찰중립화의 필요성을 적은 글도 있지만 귀여운 금붕어나 학원에서 만난 여자친구에 대한 천진난만한 단상들이 더 많았다. 그제야 이군이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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