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밤, 40도에 다다른 달구벌의 응원 열기에 프랑스 예술축구는 한여름 얼음보숭이 마냥 힘없이 녹아내린다. 사상과 이념 같은 복잡한 휴전의 철책도 이렇게 한번에 녹여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뜬구름 같은 상상이 순간 머물고, 나는 그냥 웃는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나의 이 소망을 현실이라는 밭에서 심고 가꾸어가는 ‘평화통일의 농사꾼’ 김두현(36)씨를 만났다. 평생 꿈이 뭐냐는 물음에 거침없이 나오는 말이 “평화통일에 한몫 하는 것”이니 이 정도 수식어는 약과인지도 모른다. “그럼 휴전선이 사라지면 뭘 하실 거예요?”라는 질문에 그는 싱긋 웃고 반문한다. “통일 된 이후에도 통일운동은 필요해. 왜냐하면 통일은 정치적 체제의 통합 문제를 넘어서 동질성 회복의 문제이기 때문이지. 통일운동은 통일된 이후에 더 절실하지 않을까?”
이런 대답을 1초의 막힘 없이 술술 풀어내는 김두현씨는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통일유니버시아드시민연대 대외협력부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 직함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건 바로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심기 시작한 평화와 통일의 나무는 이제 조금씩 영글어 나름의 싹도 틔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날 남과 북의 하나된 응원을 이끌어낸 ‘아리랑응원단’(http://www.tongil-u.or.kr)인데, 요즘 하루 신청자 수만 100여명에 이른다 하니 자의타의 ‘보수’라는 두 글자로 선명한 대구에서 이루어내는 일이니 참 대단도 하다 싶다.
대학 선배이기도 한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노을을 이룰 때 금강산 길을 동행하고서부터였다. ‘대학생 통일탐구단’이라는 이름으로 북녘 땅을 처음 밟았던 나는 그에게 중요한 것을 배웠다. 북쪽 안내원과 말을 할 때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북한이라는 말을 쓰는 건 북쪽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명칭을 쓰든지, 아니면 북측·북녘·이북 등의 용어를 써야 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뜨끔했는지 모른다. 잡초와 야생초, 환경과 생명의 용어 선택 문제도 결국 이 말과 통한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밥 먹을 시간도 여유도 없어 허기진 배를 시멘트 바닥에 그냥 앉아 김밥 하나로 떼우는 김씨. 곁에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시간까지 뺏을 수 없었기에 서둘러 인터뷰를 끝내고 한나절 그의 개인 기사 노릇과 잔심부름을 하며 스스로 미안함을 달랬다. 그와 함께 한 시간 중에 나눈 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남북 관계는 믿음과 기다림이야. 절대 조급하면 안 돼.”
대구=김건우 | 6기 독자편집위원

대구=김건우 | 6기 독자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