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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봄비 같은 어머니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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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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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봄날]

우리집 막내 조카는 엄마·아빠와 나한테는 물론이요 전화를 통해서도 이모·고모들에게 거의 매일 사랑한다는 소리를 수십번씩 듣는다. 부모님이 나를 품에 안고 물고 빨면서 사랑스러워하셨던 적은 통 기억나질 않는다. 특히 우리 어머니는 원래 성격이 무뚝뚝하셨던건지 아니면 가난한 살림에 네 형제를 키우시는 게 고달프고 힘이 드셔서 그랬는지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셨다.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는 남의 집 막내들이 하듯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봄비 내리던 일요일을 내 가장 따뜻한 봄날로 기억한다. 왜냐면, 그날은 바로 어머니께서 날 사랑하고 계시다는 걸 알아버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 박현미
아마 서울 친척의 결혼잔치에 가던 길이었나보다. 특별히 막내인 나를 서울구경을 시켜주시려 했는지, 아니면 날 돌보아줄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셨다. 처음 타본 전철은 마냥 내마음을 설레게 했다. 드디어 전철이 서울을 향해 철커덕거리며 움직일 때 창 밖으로 소리 없이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봄비가 바람을 타고 전철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의 철커덕거리는 소리와 흔들림이 마치 어머니 등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떠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 앉았고 몸은 자꾸 어머니쪽으로 기울었다. 몇번 고개를 떨구며 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지만 어느새 나는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유독 우리 어머니는 몸에 기대어 부대끼는 걸 싫어하셔서 형제들 어느 누구도 어머니께 매달리거나 부대끼는 짓은 하질 않았다. 어머니가 나의 몸을 옆으로 밀쳐내실까 걱정이 되어 졸음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그때, 어머니는 몸을 뒤로 기대시더니 나의 머리를 감싸 안아주셨다.

나는 그것을 느끼는 순간 숨도 쉬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으로 내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시고는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그때부터 목적지까지 눈을 꼭 감은 채 계속 어머니의 어깨에 기대어 가만히 있었다. 혹여 내가 잘못 바스락거려 움직이기라도 하면 어머니의 손길이 거두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3주간은 금요일마다 비가 내렸다. 나는 아파트 알뜰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작은 언니가 하루종일 내리는 비로 투덜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곁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그 전철 안에서 보았던 봄비를 다시 생각했다. 그 봄비마냥 조용하고 푸근하게 내 이마를 쓰다듬던 어머니의 손길을 생각했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죠? 사랑합니다.


임선화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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