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봄날]
몇년째 선운사에 못 갔다. 그래서일까, 요 몇년 동안 맞은 봄은 어딘가 미심쩍게 봄 같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삶의 눈금을 가늠하는 모눈종이가 하나씩 있다면 나에게는 그것이 선운사, 모눈종이 칸칸을 채운 동백꽃.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위로 송창식도, 서정주도, 육자배기 가락도, 탁배기 한 사발 안에서 휘도는 봄 풍경. 그렇게 겨울마다 선운사 도솔암에 쌓인 눈 한번 밟고 나서야 봄이 제대로 내 몸 위로 내려앉곤 했는데, 지난해 겨울 선운사는커녕 발을 문 밖으로 내밀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는 모르겠다.
해일처럼 엄청난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지난해 겨울, 인간이 부딪치는 문제는 언제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뿐이라던 마르크스의 말조차 믿을 수 없게끔, 감당할 수 있으면 해보라며 달려드는 일들 앞에서 맥없이 무릎이 꺾이곤 했다. 결혼을 앞뒀던 오랜 연애를 접고, 밥벌이를 관두고,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에도 열두번씩 이런저런 생각들이 널을 뛰고, 참 많이 아팠다. 어느새 방안은 캄캄한 동굴로 변해 있었다. 무릎으로 기어 어둠의 심연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거기 손톱만큼 작은 틈새로 빛이 보였다. 3년 동안 묵혀두었던 소설 노트를 펼쳤다. 마비된 손에 피가 돌고 죽었던 신경이 되살아나듯, 소설을 썼다. 그리고 봄. 늘 겨울을 앓아서, 우울하고 추운 석달을 기신기신 보내고 나면 봄맞이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올봄은 달랐다. 호되게 앓고 난 뒤 기름기가 쪽 빠져 해맑아진 기분으로 곰팡내 나는 몸 구석구석을 열고 봄햇살 아래 섰다. 아찔했다. 햇살의 맛, 몸을 소독하는 자외선의 알싸한 맛을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봐,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하게 될까봐 울며불며 매달리던 시간들이 이제야 찬찬히 나를 돌아본다. 가만 보니 그 시간의 얼굴이 팽팽한 청춘이다. 누가 서른살 넘은 여자보고 노처녀라고 했던가. 한 시간 한 시간이 맛나고 재미있다. 내 마음의 평수를 한칸 한칸 넓혀가면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의자를 하나 더 놓아가면서 나이 먹는다는 것이, 세상을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날 섰던 마음이 봄햇살에 늘어진 고양이처럼 누그러진다는 것이 이토록 좋을 수가 없다. 청량음료처럼 앙칼진 스무살도 좋았지만, 부드럽게 우려낸 녹차 같은 서른살이 좋다. 떫은 끝맛은 여전하지만,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떫음도 가시겠지. 남보다 늦되고 둔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이제야 겪었으니, 좋은 일만 남았다. 웃음이 나온다. 전성시대, 청춘시대, 무엇이든 올 테면 오라! 쥐뿔도 없이 배짱만 두둑해졌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기, 내 가장 아름다울 시간들이 벙긋거리며 피어나고 있다.
전미영 | 서울시 은평구 불광2동

일러스트레이션 | 박현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