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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새내기 교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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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7-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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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봄날

나의 교직 생활은 서울 신림동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꿈은 많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때였다. 수업은 엉망이었고, 아이들은 나와의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별하지 않았다. 옆 교실에서 수업하던 선생님께서 참지 못하고 건너오시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했다. 과학을 가르치는 나는 60명이 넘는 아이들과 실험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무엇인가를 깨뜨리곤 했고, 심지어 실험대 위에 알코올 램프를 쏟으며 불을 낸 적도 있었다. 이런 끊임없는 실수로, 나는 과학실험실 한 모퉁이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 선생님들은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셨고,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를 격려해주셨다.

일러스트레이션 | 박현미
그런 와중에 다시 3월이 왔고, 드디어 나는 첫 담임으로 1학년 학생들을 맡게 되었다. 학기 초 처음 담임하는 사람의 ‘정신없음’을 뭐라 이야기할까. 어떻게 한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그토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아이들과 어떤 것도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같이 있었다. 넉넉한 가정형편, 넘치는 부모님의 사랑, 앞선 성적을 가진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두컴컴한 지하 셋방에 사는 친척집에 맡겨져 추운 겨울에도 얇은 점퍼 하나로 버티는 아이가 있었다. 용돈이라도 쥐어줄라치면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한번도 받지 않던 그 아이는 나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하였다.

그들 중에 한 아이가 있었다. 약간은 불량기를 가진, 수업을 활기차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덩치 좋은 아이였다.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이 덩치 좋은 아이도 학교에 남아 환경미화에 열심인 아이들의 심부름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방구에서 물건을 사오다가 2학년인 동네형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이 아이의 주머니에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칼날 빼는 소리가 무시무시한 커터칼이 있었다. 서로 까불고 아는 척을 하다 이 아이의 손에 있던 칼이 상대방 2학년 학생의 팔꿈치를 깊숙이 찔렀다.

교실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나의 암담함을 누가 이해할까? 다친 아이는 병원에 실려갔다. 통상적으로 학교에서 폭력으로 처리되는 이 일은 학생부 사안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라 믿었고, 아이들이 학생부로 불려다니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아야 될 일이라 생각하였다. 다행히 두 아이의 어머니는 서로의 아이들을 걱정하였고, 그 결과 일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해마다 먼지 풀풀 날리는 봄이 되면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물론 그 아이는 멋진 청년이 되어 거들먹거리며 인생의 봄을 구가하고 있고, 나는 점점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순수함과 열정 속에 살았던 그 젊은 날들을 바람 부는 봄과 함께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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