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봄날
6·25 직후, 그때의 삶은 상상만 해도 정말 힘겨웠을 것이다. 미군한테 몸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야 했던 치욕스런 현실…. 하지만 그 현실을 소재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슬프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 시간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시간이 많이 흘렸기 때문일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야 그것을 알 것 같다.
지난해 가을, 대학원 2학기째였던 난 힘겨운 세미나 수업들과 학원 아르바이트 등으로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선한 가을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높아지는 하늘에 시시때때 바뀌는 구름 모양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그리고 심해지는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하고 병원에 같이 가자는 엄마의 부탁도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병원 컴퓨터에 비춰졌던 엄마의 폐, 이미 암 덩어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표정에서 앞으로 다가올 칼날처럼 시릴 겨울의 모습을 보았다. 유능하다는 병원과 좋다는 약들, 그리고 마르지 않는 눈물도 아무 위로가 되지 못했다. 과연 봄이 올까? 그동안 나는 더 좋은 것들, 더 예쁜 것들이 더 많이 있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덜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불행한 거라고 불평했다.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은 우리가 서 있는 땅 바로 밑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빛 속에서 기뻐하십시오. 모든 그림자를 빼앗아가는 강한 빛을 요구하지 마십시오.”(헨리 나우웬)
말기 암을 선고받은 몇 개월 동안 항암 치료에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몸은 쇠약해가지만, 엄마는 그 고된 현실 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하신 것 같았다. 감추어진 보물을 믿으시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내일 일을, 그리고 어떤 추측이나 결과도 모른다. 단지 지금 생명이 있고, 주어진 삶이 있고, 함께 기도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알고 있다. 삶 그대로의 삶 자체를 산다는 것은 지금 볼 수 있는 것을 즐기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 것일 테니깐.
<아름다운 시절> 영화감독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단지 6·25 직후의 현실을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처절한 시절에 태어난 생명이 그 시대를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픔이 많았지만, 이미 그 아픔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빛이 되어 기쁨을 주고 있기에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이하정 | 부산시 금정구 서1동

일러스트레이션 | 박현미
이하정 | 부산시 금정구 서1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