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스포츠로 바라보라
이번호 특집 기사에서 조든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관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저 실력이 좀 나을 뿐인 일개 스포츠맨이 성공신화로 부풀려져 제도권과 상업화의 이데올로기 전파에 이용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면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요 스포츠 상품화, 인종불평등의 은폐, 백인 우월주의 강조의 문제가 조든 성공신화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는 지나치게 삐딱한 시선이 아닌가 합니다. 상품 판매를 위해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거대기업이 이익을 내는 방법에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런 근거에 적어도 조든이 낄 자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본적으로 흑인의 경제적 신분 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조든이라는 극소수 특수사례가 부풀려진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 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가 흑인과 외국인을 배제한 백인 일색이라면(실제로 초창기 한동안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평가받을까요. 일례로 미 프로야구(MLB)에서 베이브 루스의 한 시즌 최다홈런을 깬 행크 아론은 흑인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습니다. 조든은 요행히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에 대해서는 마땅히 개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든과 허재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분야에서 단연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386이 됐든, 신보수주의와 주류 이데올로기가 됐든 다른 어떤 사회학적 논의도 거추장스러운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는 스포츠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윤태호/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허재가 주는 ‘행복 에너지’
우리에게 스포츠처럼 노력과 땀을 통해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깨우는 대상은 드문 것 같다. 때론 패배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돌격하는 진정한 승부사들이 모인 경쟁의 장이기에.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이가 허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성싶다. 우리나라 현대 스포츠의 산 증인이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그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투지와 승부욕이 가져다주는 메시지는 386세대에 전하는 희망과 위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선수생활 동안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한때의 좌절과 역경을 극복한 아름다운 재기의 모습은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채 획일화된 매너리즘에 빠져든 우리 사회에 참된 스포츠 정신을 일깨움과 동시에 끊임없는 ‘행복 에너지’를 충전해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정상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그래도 평화를 외쳐야 한다 움직이는 세계 ‘NO 한 프랑스는 괴로워’는 반전의 최선두국가였던 프랑스가 현실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이에 대조적인 국내의 목소리 사이 갈등에 대해 잘 설명한 기사였습니다. 사실 반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실리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외교관계이며 국제관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관계의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의 평화를 향한 목소리는 계속되어야 하며, 그 하나된 목소리는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바꿀 수 있는 힘으로 응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우선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정민지/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한총련 친구의 웃음을 소망하며 한총련이란 조직은 대학생활을 8년째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 대학생들에게 계속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대학의 역할이 정비되지 않은 한국에서, 보수와 수구가 기득권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상 대학생들이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97년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결 이후 한총련은 빨간색이 덧칠되어 보여지고 있다. 정재욱 한총련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편지는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강조한 ‘토론공화국’의 한 갈래로 본다. 과거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대신했던 의사소통이 편지와 대화로 이루어질 때 한총련의 모습은 바르게 변모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에서 수배자 문제를 검토하고, 한총련 내에서도 계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이상 이제 내 옆의 친구들은 명절에 집에 갈 수 있고, 교생실습을 당당하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년째 수배생활을 하며 새로 이사한 집의 자기 방 구조도 모르는 한총련 수배자 친구의 어깨가 이번 편지를 계기로 활짝 펴졌으면 하고 소망한다. 진달래가 피고 분수가 시원하게 내뿜어지는 캠퍼스 안에서 구시대적 법의 잣대는 유연해져야 한다고 본다. 장선직/ 서울시 강북구 번1동
유연한 인터넷 실명제를 우리 사회는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돼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다. 인터넷은 열린 매체라는 명칭에 걸맞게 정보와 오락의 공급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네티즌끼리 공유할 수 있고 거리응원이나 촛불시위 등 시공을 초월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열린 공간을 통해 만나는 세상이 반드시 생산적이고 밝은 것만은 아니다. 초등학생까지 유혹하는 자극적인 영상, 무차별적 욕설과 비하, 사생활 침해와 근거 없는 소문들까지. 네티즌 각자의 도덕성만 믿는 사이 인터넷의 병폐는 심각해졌다.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리 없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숨긴 공격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을 만큼 당연한 내용이다. 요컨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기본 원칙에 입각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자료에 대해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물론, 성폭행 피해 여성을 위한 사이버 공간 등 악의 없이 본인을 밝히기 꺼리는 곳의 일부는 익명화하는 것이 좋다. 얼마 전 공공기관부터 익명 사용을 규제하라는 정통부의 방침이 있은 뒤 실명제에 대한 논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꽃들이 모여 서로 어우러지면 홀로 있을 때보다 아름답듯이, 상대방 의견에 관용을 자세를 갖고 유연성 있게 대책을 마련한다면 한층 높아진 수준의 사이버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양미나/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4가
허재가 주는 ‘행복 에너지’
우리에게 스포츠처럼 노력과 땀을 통해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깨우는 대상은 드문 것 같다. 때론 패배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돌격하는 진정한 승부사들이 모인 경쟁의 장이기에.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이가 허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성싶다. 우리나라 현대 스포츠의 산 증인이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그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투지와 승부욕이 가져다주는 메시지는 386세대에 전하는 희망과 위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선수생활 동안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한때의 좌절과 역경을 극복한 아름다운 재기의 모습은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채 획일화된 매너리즘에 빠져든 우리 사회에 참된 스포츠 정신을 일깨움과 동시에 끊임없는 ‘행복 에너지’를 충전해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정상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그래도 평화를 외쳐야 한다 움직이는 세계 ‘NO 한 프랑스는 괴로워’는 반전의 최선두국가였던 프랑스가 현실적으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이에 대조적인 국내의 목소리 사이 갈등에 대해 잘 설명한 기사였습니다. 사실 반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실리를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외교관계이며 국제관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관계의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의 평화를 향한 목소리는 계속되어야 하며, 그 하나된 목소리는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바꿀 수 있는 힘으로 응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우선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정민지/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한총련 친구의 웃음을 소망하며 한총련이란 조직은 대학생활을 8년째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 대학생들에게 계속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대학의 역할이 정비되지 않은 한국에서, 보수와 수구가 기득권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상 대학생들이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97년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결 이후 한총련은 빨간색이 덧칠되어 보여지고 있다. 정재욱 한총련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편지는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강조한 ‘토론공화국’의 한 갈래로 본다. 과거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대신했던 의사소통이 편지와 대화로 이루어질 때 한총련의 모습은 바르게 변모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에서 수배자 문제를 검토하고, 한총련 내에서도 계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이상 이제 내 옆의 친구들은 명절에 집에 갈 수 있고, 교생실습을 당당하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년째 수배생활을 하며 새로 이사한 집의 자기 방 구조도 모르는 한총련 수배자 친구의 어깨가 이번 편지를 계기로 활짝 펴졌으면 하고 소망한다. 진달래가 피고 분수가 시원하게 내뿜어지는 캠퍼스 안에서 구시대적 법의 잣대는 유연해져야 한다고 본다. 장선직/ 서울시 강북구 번1동
유연한 인터넷 실명제를 우리 사회는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돼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다. 인터넷은 열린 매체라는 명칭에 걸맞게 정보와 오락의 공급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네티즌끼리 공유할 수 있고 거리응원이나 촛불시위 등 시공을 초월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열린 공간을 통해 만나는 세상이 반드시 생산적이고 밝은 것만은 아니다. 초등학생까지 유혹하는 자극적인 영상, 무차별적 욕설과 비하, 사생활 침해와 근거 없는 소문들까지. 네티즌 각자의 도덕성만 믿는 사이 인터넷의 병폐는 심각해졌다.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리 없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숨긴 공격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을 만큼 당연한 내용이다. 요컨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기본 원칙에 입각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자료에 대해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다. 물론, 성폭행 피해 여성을 위한 사이버 공간 등 악의 없이 본인을 밝히기 꺼리는 곳의 일부는 익명화하는 것이 좋다. 얼마 전 공공기관부터 익명 사용을 규제하라는 정통부의 방침이 있은 뒤 실명제에 대한 논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꽃들이 모여 서로 어우러지면 홀로 있을 때보다 아름답듯이, 상대방 의견에 관용을 자세를 갖고 유연성 있게 대책을 마련한다면 한층 높아진 수준의 사이버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양미나/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4가

이성렬 ddiry@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