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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화는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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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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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독자/ (주)데코리 경영지원팀 손성록씨

심심찮게 찾아가는 친구 부부네서 어색히 마주치는 한 사람이 있다. 친구 부부네서 내 볼일은 따스한 밥을 얻어먹는 것이라면, 그의 볼일은 그가 동네형이라 부르는 내 친구 신랑과 스키와 인라인 스케이트에 대해 수다를 떠는 일이다. 자신은 책을 읽지 않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좋아한다는 손성록(28)씨의 궤변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지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잘 알고 있다면, 나는 어떤 스키가 좋은지 어떤 인라인 스케이트가 좋은지는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눈빛은 잘 잊히지 않는다.

주말을 빌려 친구 부부네로 <한겨레21>을 잔뜩 들고 갔다. 말은 따스한 밥을 챙겨주는 것이 고마워서라고 했지만, 사실 <한겨레21>이 눈앞에 보이면 친구 부부가 그나마 몇장이라도 읽어보겠거니 하는 바람에서였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기 전에 들른 그와 또 마주쳤다. “나도 <한겨레21> 보는데…. 대학 때부터 습관처럼 말이죠. <한겨레21>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 문화면이 어렵다는 거예요. 나는 문화는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겨레21>은 문화를 공부하게 해요. <한겨레21> 문화면이 아무리 가벼워진다고 한들 스포츠신문 연예면마냥 경박하게 되진 않을 거예요. 나는 <한겨레21>의 자정능력을 믿거든요.”

그는 요즘 참 바쁘다. “신종 레포츠 사업을 시작했어요. 스키와 인라인 스케이트에 미쳐 사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게 기뻐요.” 신종 레포츠 사업 “우리나라에 ‘외발 썰매’라는 게 있어요. 민속놀이기구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 제품은 거기서 착안한 발명품이에요. 아직 시판은 되지 않았지만 난 확신해요. 내가 즐겨타고 싶은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리라는 것을요. 내가 자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올림픽공원이 ‘외날 스케이트 보드’(가칭)를 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이 내 꿈이에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주말이면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그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이 즐거워 벌인 일이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을 뿐이라고, 어쩌면 이런 소박한 바람을 갖는 것이 사업가가 지녀야 할 모습은 아닐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이 팔리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많은 사람과 공유하길 바라는 진정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그는 이미 멋진 사업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게 석촌호숫가로 이사오면서 자전거를 사려고 한 내 계획을 바꿔 ‘외날 스케이트 보드’(가칭)가 시판되면 그것을 사리라 약속했다. 10년 뒤에는 나도 내 출판사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내가 만든 책을 꼭 읽어달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안명희/ 5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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