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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카오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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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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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독자/ 영화감독 지망생 장우석씨

지난 4월20일 끈질긴 빗방울의 행렬이 기어코 한 그루 벚꽃을 완전히 뭉개버릴 즈음, 새벽녘 허름한 오뎅집에서 그와 헤어졌다. 그러나 그날 밤 어둠이 찾아올 무렵, 나는 인터뷰를 위해 ‘예비감독’ 장우석을 chaosAD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다시 만났다.

chaosAD, 참 희한하고도 어려운 아이디다. 여기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날로그(A)와 디지털(D), 둘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 혼란(chaos)에 빠져 있다.” 그에게 대구지하철 참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끔찍한 사고현장의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으로 볼 수 있게 하려고, 그토록 수많은 언론과 시민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고 현장에 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유족들은 저리도 울고 있는데.” “며칠 전 대구에서 열린 평화영화제에서 변영주 감독이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에는 눈으로 보지 않고 상상만 해도 충분한 일들이 있다고. 굳이 그것들을 사진이나 영상물로 찍어서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요.” 그는 아날로그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양손에 움켜쥔 채 혼돈에 빠져 있는 듯했다. 이번 지하철 사고는 그를 혼돈의 미궁 속으로 더욱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는 1994년 <한겨레21>이 세상에 태어나 막 기지개를 켤 때 한겨레신문사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분분한 요즘에 한마디 한다. “지금의 저는 대학 입학할 때의 제가 아니고, 졸업 무렵의 저도 아닙니다. 저는 변했지만 내 중심은 살아 있어요. <한겨레21>도 그런 것 같아요. <한겨레21>이 그때 그 마음을 버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새겨들을 한마디를 건넸다. “<한겨레21>은 이제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돌아보고, 정리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chaosAD, 그는 참 재주가 많다. ‘다재다능’이라는 사자성어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양 싶을 정도다. 어릴 적엔 미술을 했고, 좀 커서는 밴드를 결성해 노래를 불렀다. 비록 습작 단계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감독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디자인까지 시작했다. 또 대학신문에 달마다 활동 내역이 실리는 독서 토론회인 ‘목요 북까페’(cafe.daum.net/exlibris)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단상斷想, image, 어느 날의 나’(column.daum.net/wsjang)에서는 칼럼을 쓰고 있다.

헤어짐이 아쉬워 욕심 많은 그와 꿈을 이야기해보았다. “여우 같은 마누라 만나서 토끼 같은 자식 낳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거죠. 이게 제 꿈이에요.” chaosAD의 꿈이 이뤄지는 날, 과연 이 세상에는 코스모스(질서)가 올까?


김건우/ 5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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