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만은 아니길…
부산엔 벌써 벚꽃들이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조만간 꽃들이 겨울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듯 합니다. 이렇게 봄이 문턱을 넘어 들어오건만,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잡아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자기 나라, 아니 자기 일당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하는것이, 무고한 이라크 국민을 죽이는 일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않을까요. 선진국들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무기를 만든다지만, 정작 평화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이 그들 자신이란 걸 왜 알지 못할까요. 이라크 다음 목표가 북한이 될 것이라는 글을 읽었을 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TV로만 무덤덤히 접하던 전쟁의 공포를 이제서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라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무기들을 없애면서 외교적으로 협상을 하려 하지만, 안으로는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사담 후세인이 완전히 백기를 들고 앞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쟁 못해 안달난 부시가 정말 다음 타깃으로 북한을 들먹일까요 부디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우미주/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부모의 잘못인가
이번호 논단 ‘안전불감증 부모’를 관심 있게 읽었다. 중·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수업이 끝난 뒤 TV를 보는 것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생들이 여가를 즐길 만한 공간도 충분치 않았고, 학원을 다니거나 자율학습을 할 경우엔 해가 한참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5~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학생들이 맘 놓고 숨쉴 공간은 많이 늘지 않았고, 그들의 생활은 더욱 각박해지기만 한다. 부모님들이 정말 안전불감증에 걸려 연령제한 드라마를 쉬이 보게 하는 걸까. 그것말고는 자식들의 욕구나 피로를 해소시켜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또 요즘 드라마들은 사전에 심의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날 촬영해서 그날 방영한다. 그래서 연령제한 마크가 연령제한이 필요한 순간에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드라마 자체를 연령제한 드라마로 규정한다. 그러한 드라마들은 일주일 내내 황금시간대에 방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님들의 양심에 대해서만 호소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안전불감증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의 편의를 좇는 방송사들을 옹호하고, 대신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일이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본질을 먼저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하덕근/ 서울시 구로구 개봉2동 국제결혼의 대안을 위하여 어느새 <한겨레21>이 창간 9돌을 맞이했다니…. 특대호가 가판에 선보이자마자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설레는 맘으로 한권 집어들었죠. 특히 이번 표지이야기인 국제매매혼 체험르포를 가장 먼저 펼쳐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총각 기자님이 신분을 속이고 직접 잠입취재를 했다고 해서 뭔가 다를 거란 기대를 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무엇이 궁극적으로 베트남 여성들로 하여금 재혼자든 장애인이든 상관없이 한국 남성들에게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까지 몰아갔나 궁금해서였죠. 하지만 <한겨레21> 고유의 심도 있는 시각과 접근이 좀 부족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베트남 현지 밀착 잠입취재여서 생생하긴 했는데, 이미 TV 시사다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국제매매혼 과정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다 보니 시각이 쇼핑하듯 결혼상대를 찾는 한국 남성의 입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왕이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희망의 동아줄로 보는 그곳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이 가족, 노동시장, 경제와 사회 속에서 어떤 연관을 갖고 그들을 국제매매혼이라는 비상구로 몰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다뤄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국제매매혼을 통해 피해를 입은 한국 남성들의 사례도 들려오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조선족·필리핀 출신 여성들 역시 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 출신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한국적 남성우월주의 문화와 맞닥뜨려 출발선에서부터 여성을 종속적 지위에 놓는 ‘불행한 결혼’의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제결혼의 현실에 비춰볼 때 상호간 보다 발전적인 결합을 위해 이제 우리 사회가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연/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언론이 대답할 때 지난 3월14일 문화관광부의 ‘홍보업무 운영방안’이 발표된 이후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매체,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이번 정책에 대해 국민 알 권리의 제한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언론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고자 마련한 이번 방안은 과거 관언유착의 고리를 끊고, 언론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지켜나가겠다는 기조 아래 개방·공평·정보 공개의 원칙에 입각해 홍보업무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문화관광부 홍보업무 운영방안에 대해 대체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그간 권언유착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언론의 권력화와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장관의 언론과 관계의 개혁이라는 정부 방침에 공감이 간다. 둘째,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성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종을 위해서나 또는 신문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해서 자행되는 부정확한 추측성 보도관행과 자전거일보로 일컬어지는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 독자로서 회의감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 방침에 대해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 침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만 일관할 게 아니라 자성의 기회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의 보장을 위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충실해왔는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의 몫이다. 우리 사회 개혁의 주체로서 검찰개혁은 검찰이, 언론개혁은 언론이, 기업개혁은 기업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개혁 대상이 개혁의 본질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실질적이고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문화관광부 장관이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이 정부가 언론개혁을 목적으로 마련한 지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부가 먼저 언론과의 관계를 개혁하고자 선택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바통은 언론으로 넘어갔다. 얼마 전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젊은 검사들이 우리 국민에게 보여준 실망감을 언론에서는 두번 다시 보지 않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한효민 세계정세, 소신 있게 바라보라 3월20일 11시35분 인류는 다시 한번 역사에 피얼룩을 남겼다. 이라크 공습. 학생인 나에게도 눈물이 밀려오는 단어다. 갖은 위험에도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미국의 이라크 무장해제라는 주장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이라크 대량학살무기의 유무가 확실치 않은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석유를 비롯한 자국의 이득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서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국민과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다른 어느 누구도 밟을 수 있는 나라다. 이것이 비록 정치인들의 결정인지 모르지만 전쟁 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볼 때 소수의 정치인들만의 특성은 아니리라. 지금 이라크에서는 잘 먹지도 못하는 민간인들이 전쟁의 희생양으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인권국가라 자처하는 미국은 이런 이라크인들의 인권에 대해 단 한번의 주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인류의 피와 바꾸려 한다. 날마다 두려운 공포에 몸서리칠 그들의 나날을 웃고 행복하게 지내는 나 자신이 죄를 짓는 것만 같다. 그런데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런 전쟁에 우리나라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미국과의 우호를 위해서다. 여론을 무시한 채 한-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지원날짜까지 앞당기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은 수치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언제나 미국의 뒤에서 그림자로만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이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다. 또한 전쟁에 승리한 미국은 또 다른 이익을 위해 세계 어디를 위협할지 모른다. 만약 저번 발표처럼 다음 타자로 북한을 지목한다면 난 묻고 싶다. 우리 정부는 그때도 아무 판별 없이 미국과의 우호를 위해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것인가를. 지금의 이라크전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좀더 소신 있게 세계정세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장유미/ 충남 천안시 쌍용동
이번호 논단 ‘안전불감증 부모’를 관심 있게 읽었다. 중·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수업이 끝난 뒤 TV를 보는 것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생들이 여가를 즐길 만한 공간도 충분치 않았고, 학원을 다니거나 자율학습을 할 경우엔 해가 한참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5~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학생들이 맘 놓고 숨쉴 공간은 많이 늘지 않았고, 그들의 생활은 더욱 각박해지기만 한다. 부모님들이 정말 안전불감증에 걸려 연령제한 드라마를 쉬이 보게 하는 걸까. 그것말고는 자식들의 욕구나 피로를 해소시켜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또 요즘 드라마들은 사전에 심의를 할 수 없을 만큼 그날 촬영해서 그날 방영한다. 그래서 연령제한 마크가 연령제한이 필요한 순간에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드라마 자체를 연령제한 드라마로 규정한다. 그러한 드라마들은 일주일 내내 황금시간대에 방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님들의 양심에 대해서만 호소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안전불감증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의 편의를 좇는 방송사들을 옹호하고, 대신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일이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본질을 먼저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하덕근/ 서울시 구로구 개봉2동 국제결혼의 대안을 위하여 어느새 <한겨레21>이 창간 9돌을 맞이했다니…. 특대호가 가판에 선보이자마자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설레는 맘으로 한권 집어들었죠. 특히 이번 표지이야기인 국제매매혼 체험르포를 가장 먼저 펼쳐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총각 기자님이 신분을 속이고 직접 잠입취재를 했다고 해서 뭔가 다를 거란 기대를 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무엇이 궁극적으로 베트남 여성들로 하여금 재혼자든 장애인이든 상관없이 한국 남성들에게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까지 몰아갔나 궁금해서였죠. 하지만 <한겨레21> 고유의 심도 있는 시각과 접근이 좀 부족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베트남 현지 밀착 잠입취재여서 생생하긴 했는데, 이미 TV 시사다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국제매매혼 과정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다 보니 시각이 쇼핑하듯 결혼상대를 찾는 한국 남성의 입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왕이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희망의 동아줄로 보는 그곳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이 가족, 노동시장, 경제와 사회 속에서 어떤 연관을 갖고 그들을 국제매매혼이라는 비상구로 몰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다뤄주면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국제매매혼을 통해 피해를 입은 한국 남성들의 사례도 들려오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조선족·필리핀 출신 여성들 역시 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 출신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한국적 남성우월주의 문화와 맞닥뜨려 출발선에서부터 여성을 종속적 지위에 놓는 ‘불행한 결혼’의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제결혼의 현실에 비춰볼 때 상호간 보다 발전적인 결합을 위해 이제 우리 사회가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연/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언론이 대답할 때 지난 3월14일 문화관광부의 ‘홍보업무 운영방안’이 발표된 이후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매체,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이번 정책에 대해 국민 알 권리의 제한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언론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고자 마련한 이번 방안은 과거 관언유착의 고리를 끊고, 언론과 적절한 긴장관계를 지켜나가겠다는 기조 아래 개방·공평·정보 공개의 원칙에 입각해 홍보업무 운영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문화관광부 홍보업무 운영방안에 대해 대체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그간 권언유착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언론의 권력화와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장관의 언론과 관계의 개혁이라는 정부 방침에 공감이 간다. 둘째,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성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종을 위해서나 또는 신문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해서 자행되는 부정확한 추측성 보도관행과 자전거일보로 일컬어지는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 독자로서 회의감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 방침에 대해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 침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만 일관할 게 아니라 자성의 기회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의 보장을 위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충실해왔는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의 몫이다. 우리 사회 개혁의 주체로서 검찰개혁은 검찰이, 언론개혁은 언론이, 기업개혁은 기업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개혁 대상이 개혁의 본질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실질적이고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문화관광부 장관이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이 정부가 언론개혁을 목적으로 마련한 지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부가 먼저 언론과의 관계를 개혁하고자 선택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바통은 언론으로 넘어갔다. 얼마 전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젊은 검사들이 우리 국민에게 보여준 실망감을 언론에서는 두번 다시 보지 않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한효민 세계정세, 소신 있게 바라보라 3월20일 11시35분 인류는 다시 한번 역사에 피얼룩을 남겼다. 이라크 공습. 학생인 나에게도 눈물이 밀려오는 단어다. 갖은 위험에도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미국의 이라크 무장해제라는 주장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이라크 대량학살무기의 유무가 확실치 않은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석유를 비롯한 자국의 이득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서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국민과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는 다른 어느 누구도 밟을 수 있는 나라다. 이것이 비록 정치인들의 결정인지 모르지만 전쟁 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볼 때 소수의 정치인들만의 특성은 아니리라. 지금 이라크에서는 잘 먹지도 못하는 민간인들이 전쟁의 희생양으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인권국가라 자처하는 미국은 이런 이라크인들의 인권에 대해 단 한번의 주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인류의 피와 바꾸려 한다. 날마다 두려운 공포에 몸서리칠 그들의 나날을 웃고 행복하게 지내는 나 자신이 죄를 짓는 것만 같다. 그런데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런 전쟁에 우리나라가 손을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미국과의 우호를 위해서다. 여론을 무시한 채 한-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지원날짜까지 앞당기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은 수치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언제나 미국의 뒤에서 그림자로만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이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다. 또한 전쟁에 승리한 미국은 또 다른 이익을 위해 세계 어디를 위협할지 모른다. 만약 저번 발표처럼 다음 타자로 북한을 지목한다면 난 묻고 싶다. 우리 정부는 그때도 아무 판별 없이 미국과의 우호를 위해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것인가를. 지금의 이라크전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좀더 소신 있게 세계정세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장유미/ 충남 천안시 쌍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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