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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448호를 보고

450
등록 : 2003-03-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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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로또를 제안한다

로또복권에 대한 열기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인생역전을 꿈꾸며 과도하게 복권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로또복권 판매액 가운데 당첨금(50%)과 발행비용(20%)을 제한 나머지(30%)는 건교부·과기부·문광부 등 정부기관으로 배분돼 각종 공익사업에 사용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로또를 건전하게 즐기는 사람의 하나로서 복권판매 수익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다소 안타깝다. 매주 판매되는 로또복권의 주별 주제를 정해 홍보하면 어떨까 한다. 산간벽지 도로 개·보수 로또, 청소년 과학기금 조성 로또, 소년원 도서기증 로또 등 다양한 주제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로또복권 구입자들은 자신의 주머닛돈이 결코 헛되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복권구매를 도박이 아닌 오락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김은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상인 비장애인!


이번호 특집 ‘정신장애인에 불지른 언론보도’를 읽고 역시 <한겨레21>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당일 뉴스속보를 접하며 “정신병자 한명이 여럿 죽이는구나” 하며 혀를 끌끌 찬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 지하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애인분들의 도와달라는 손길을 외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기 합리화의 근거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렇게 <한겨레21>의 예리한 시각에 감탄하며 저의 모자란 머리를 자책하며 한장 두장 넘길 때 믿지 못할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독자편집위원회 기사 가운데 ‘장애인-정상인’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독자편집위원이 설사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편집진에서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었습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장애인들의 아픔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비장애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써주는 <한겨레21>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김민우/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자

정말이지 아줌마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이름을 잃어버리고 산 지 오래된 것 같다.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무슨 모임 명부에 적힌 이름을 보면 누나 이름이나 내 이름으로 돼 있다. 분명 엄마 이름은 따로 있는데 엄마를 부를 때는 자식들 이름으로 불리기 일쑤다. 비단 우리 엄마뿐이 아니다. 엄마 친구분을 부를 때도 친구분 이름 대신 ‘ㅇㅇ엄마’라든가 아니면 아예 자식 이름이 엄마 이름이 된다. 그래서 나도 엄마 친구분의 실제 이름과 불려진 이름 사이에서 헷갈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확인시킬 수 있는 이름을 가진다. 들에 있는 잡초 하나까지 이름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아줌마란 제3의 성을 가진 우리의 어머니! 그들은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이름이란 단어를 아예 모르고 살고 있다. 아예 포기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남편 내조를 위해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없애버렸는지 모른다. 이제라도 그들이 찾지 못한 이름을 찾아줘야 할 것 같다. 어느 시의 ‘이름을 불러줄 때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엄마들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들이 하나의 의미가 되도록 우리가 먼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강경훈/ 전북 고창군 고창읍

폰뱅크의 미래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전당포가 선진 금융기법과 결합해 새로운 이색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상품을 현금화해주는 전당포 기능에 소액대출 등을 해주는 소비금융 전문회사인 폰뱅크(Pawn Bank)가 그것이였습니다. 불경기일수록 전당포는 호황을 누린다지만 옛 전당포는 역사 속으로 퇴장하는 신세가 되는 가운데, 고객이 원하면 출장 감정서비스에 고가품의 위탁판매까지 대행해주는 초현대식 전당포의 등장으로 상호신용금고 등 금융사도 이 분야에 뛰어든다고 합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대형화·체인화되어 버젓한 사업 아이템으로 정착된 신종 금융업태인 폰뱅크가 우리나라에도 정착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엄인정/ 경남 진해시 경화동

소외계층 보듬는 정책을 위해

교육부는 올해부터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를 위해, 수학·과학 성적이 우수한 이공계 신입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애초 장학금 지급대상에 검정고시생은 포함되지 않았다. 장학금 지급대상에서 검정고시생들을 배제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교육부의 어떤 관계자는 “검정고시 출신들의 학력은 인정되나 부실한 교육과정을 거친데다 재원도 넉넉지 않아 관련규정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며 매우 비논리적이고도 비교육적인 해명을 했다. 형평성 시비가 거세지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검정고시생도 장학금 지급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어설픈 해프닝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입안할 때는 선의의 소외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검토와 여론수렴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은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체성을 깨닫는 작업

이번호 논단 ‘존재와 의식’에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으로 이미 친숙한 홍세화씨가 등장했다. 진보를 막연히 바라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많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위해 전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하듯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무척 어려우며 특히 설득작업은 어렵고 더디다. 그러나 대화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안티조선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비현실적인 신화를 주입하는 거대 언론권력은 어서 언론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득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겠지만 홍세화씨 같은 분이 있기에 희망은 있어 보인다. 난 그의 글을 통해 사회진보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실현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나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상적으로 반신불수가 돼버린 일반대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주간지를 꼽는라면 단연 <한겨레21>이 될 것이다. 그 주간지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신념에 열정적인 활동을 하는 홍세화씨는 진보의 구호를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최진수/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기업의 순환출자를 막아라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배임 혐의로 구속되었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은 그룹 총수가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 회장의 구속을 계기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이룰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이 기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편 현재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금지되어 있는 데 반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으므로, 이것도 이번 기회에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순히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진 외형만을 보고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채비율을 낮추는 방법은 부채를 갚는 것말고 자본금을 증가시키는 것도 있다. 실제로 자본금이 늘어난다면야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상호출자로 인해 장부상으로만 자본금이 늘어나 부채비율이 줄어드는,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행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환부는 도지기 전에 미리 잘라내야 한다. 기업의 순환출자는 언젠가는 한국 경제를 물고늘어지는 늪이 될 수 있다.

이찬복/ 서울시 관악구 신림2동

지하철 참사와 부의 분배

대구지하철 참사를 통해 함께 사는 사회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에 따라 지금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러 부작용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 예로 빈부의 차이, 도시와 농촌 간 격차, 신·구 세대 간 갈등 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빈부의 격차에 따른 빈익층의 잠재된 욕구불만이 이번 사건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명의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불장난이 이런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 성장에 따른 적정 분배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의견 개진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손영태/ 부산시 동래구 안락1동

상이라고 다 좋은가

어렸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깨짐으로써 받은 충격 가운데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제껏 우리나라에서 단 한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없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받은 충격이다. 올림픽 영향 때문인지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믿은 어렸을 때 순진함()이 여지없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2년 우리는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노벨상을, 그것도 가장 명예롭다는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반사작용인지 그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맹목적인 노벨상 추종에 앞서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원한 것만큼의 값어치가 있었느냐는 데 대한 물음이 없었던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로 아리송한 게 많았다. 특히 우리가 유일하게 받은 평화상은 그 의미가 묘연하다. 본문 중 베긴이라는 수상자를 보더라도 그 인물의 전체적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이벤트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상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그 상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 알 때, 진정으로 그 상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상우

주주의 행동이 필요하다

회사원인 저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미국식 경영방식을 배우자는 붐이 일었던 것 같은데, 기업 지배구조의 경우에도 미국식 모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때입니다. 미국의 스타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때 미국 기업 지배구조의 변천사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100년 남짓한 경험을 통해 정착된 미국의 경우에도 기업 지배구조에 혁신을 가져온 것은 경영진의 전횡에 대한 주주의 소송제기였다는 것입니다. 즉, 착한 사람이 있어서 주주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정의’를 스스로 실천한 것이 아니라 강제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소송 등을 통해 이사회 멤버들이 많은 액수의(평균 10억원 정도였음) 배상금을 부담하면서 이사회 멤버가 그냥 이름만 걸쳐놓고 거마비나 받는 자리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찾고 맹종하려는 것은 독재를 부르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존 이해관계자의 이해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할 리는 절대로 없을 것 같습니다.

최영/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독자만화

이성열 ddi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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