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철폐, 제도적 개선을
이번호 ‘봄은 비주류 노동자에게도 올까’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현실적인 문제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적 방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려는 새 정부의 정책방향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균등 대우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 합법화 등도 추진했으면 합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 확충과 동시에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나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엄인정/ 경남 진해시 경화동
아시아 20대들의 생각에 공감하다
은연중 서구를 세계의 중심축으로 놓고 사고했던 인식습관은 <한겨레21>의 ‘아시아 네트워크’란 창을 통해 엿보는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삶, 그 빛과 그늘을 통해 번번이 깨지곤 한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채팅 아시아’ 기획은 아시아 20대의 생각들을 20대의 방식으로 풀어놓은 참신한 접근방식이 좋았다. 특히 다들 나와 같은 20대 후반이라서 더더욱 공감대는 컸던 것 같다. 일과 결혼에 대한 고민들, 세대 간 삶의 양식과 시각 차이의 갈등들이 ‘동창회 수다’처럼 친근했고, 그 나름의 고난들을 대담성과 독립성으로 헤쳐나가는 모습도 건강해보였다. 한편, “성공한 여성이나 멋진 여자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인도 남자들을 꼬집는 비니타의 비판은 같은 남자로서 뜨끔했고, “아내가 날 무시해서…”라고 말하던 한국의 가정폭력 남편들 기사와 겹쳐졌다. 하지만 가벼운 채팅의 언어들이 묵직한 ‘시사주간지’ 지면에서 어떻게 재기발랄한 이질성으로 공존할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싶다. ‘동창회 수다’가 친근하기는 하지만, 그걸 들으려고 매번 시사잡지를 구독하지는 않을 테니. 김창한/ 부산시 사하구 괴정3동 사랑의 매가 사라질 그날까지 이번호 표지에 ‘방망이는 말한다- 때리는 남편들 육성고백’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때리는 남편들의 육성고백 잘 들어보았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아직 우리 사회에는 많은 여성들이 맞으며 살고 있더군요. 북어와 여자는 때려야 한다고요 저는 이제 곧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려 하는 한 여성입니다. 기사를 보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로 사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피해 여성을 만들지 않으려면 먼저 여성들의 노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를 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사랑의 매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매는 존재할 수조차 없을 것 같네요. 저는 이성을 잃고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도 한 인격체인데 그걸 생각지 않고 동물에게조차 가할 수 없을 만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폭력을 휘두를 때는 자신이 인간이란 걸 망각하게 되는 것 같더군요.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사랑의 매조차 존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박지혜/ 대구시 동구 지저동 ‘인체의 신비전’ 조롱해야 하나 영화 <무간도>를 분석한 문화면 기사를 읽다가 비속어를 비롯한 상스러운 말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거부감을 느꼈다. 물론 원고를 청탁받아서 올려진 글이라고는 하나 ‘빠찡꼬’, ‘삐짜’ 비디오, ‘알다마를 까다’, ‘후까시’, ‘도꾸다이’ 등의 저속한 일본어 표현들은 한번쯤 여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우리말이 일본어 등 외래어에 오염돼가고 있는 마당에 순화운동을 펼치지는 못할망정 근래 ‘80년대 향수’의 물결 속에 잊혔던 저속한 표현들까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시체 포육전 그만두라’라는 기사는 그간 ‘인체의 신비전’을 둘러싼 각계 언론의 긍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비판적 관점을 취한 부분이 많은 동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의 친위 부대가 떠오른다’는 발상은 본질을 외면한 개인적 느낌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시체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도 모두 시체가 될 테니까’라는 대목은 인체 전시의 긍정적 부분을 완전히 망각하고, 전시 기획자를 조롱하는 듯한 비열한 태도의 표현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주재환/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왜 우리는 시체에 열광하는가 ‘시체 포육전 그만두라!’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전’에 대한 여성 과학자 김재희씨의 비판적인 글이었는데요, 저 역시 그의 의견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즈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부하고 있을 당시 외국언론들과 여러 과학자들의 전시에 대한 비판적(사실 비판적이라기보단 상당히 격분한) 견해를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이런 시각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는 이 전시회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이해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보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총관람객 중 청소년 이하 관람객이 60%를 차지하며, 50%가량의 관람객이 전시회에 대해 교육적이었다는 평을 내렸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괴한 열풍에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 과학자 김재희씨의 글은 전시회가 정말 교육적인가를 되물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재희씨와 생각을 같이하는 다른 소수들의 의견도 함께 실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전시회에 대한 좀더 심층적 토론이 가능했을 터이고, 나아가 외국과 달리 왜 유독 우리나라가 이 전시회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은용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 독자만화
은연중 서구를 세계의 중심축으로 놓고 사고했던 인식습관은 <한겨레21>의 ‘아시아 네트워크’란 창을 통해 엿보는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삶, 그 빛과 그늘을 통해 번번이 깨지곤 한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채팅 아시아’ 기획은 아시아 20대의 생각들을 20대의 방식으로 풀어놓은 참신한 접근방식이 좋았다. 특히 다들 나와 같은 20대 후반이라서 더더욱 공감대는 컸던 것 같다. 일과 결혼에 대한 고민들, 세대 간 삶의 양식과 시각 차이의 갈등들이 ‘동창회 수다’처럼 친근했고, 그 나름의 고난들을 대담성과 독립성으로 헤쳐나가는 모습도 건강해보였다. 한편, “성공한 여성이나 멋진 여자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인도 남자들을 꼬집는 비니타의 비판은 같은 남자로서 뜨끔했고, “아내가 날 무시해서…”라고 말하던 한국의 가정폭력 남편들 기사와 겹쳐졌다. 하지만 가벼운 채팅의 언어들이 묵직한 ‘시사주간지’ 지면에서 어떻게 재기발랄한 이질성으로 공존할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싶다. ‘동창회 수다’가 친근하기는 하지만, 그걸 들으려고 매번 시사잡지를 구독하지는 않을 테니. 김창한/ 부산시 사하구 괴정3동 사랑의 매가 사라질 그날까지 이번호 표지에 ‘방망이는 말한다- 때리는 남편들 육성고백’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때리는 남편들의 육성고백 잘 들어보았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아직 우리 사회에는 많은 여성들이 맞으며 살고 있더군요. 북어와 여자는 때려야 한다고요 저는 이제 곧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려 하는 한 여성입니다. 기사를 보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로 사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피해 여성을 만들지 않으려면 먼저 여성들의 노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를 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사랑의 매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매는 존재할 수조차 없을 것 같네요. 저는 이성을 잃고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도 한 인격체인데 그걸 생각지 않고 동물에게조차 가할 수 없을 만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폭력을 휘두를 때는 자신이 인간이란 걸 망각하게 되는 것 같더군요.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사랑의 매조차 존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박지혜/ 대구시 동구 지저동 ‘인체의 신비전’ 조롱해야 하나 영화 <무간도>를 분석한 문화면 기사를 읽다가 비속어를 비롯한 상스러운 말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거부감을 느꼈다. 물론 원고를 청탁받아서 올려진 글이라고는 하나 ‘빠찡꼬’, ‘삐짜’ 비디오, ‘알다마를 까다’, ‘후까시’, ‘도꾸다이’ 등의 저속한 일본어 표현들은 한번쯤 여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우리말이 일본어 등 외래어에 오염돼가고 있는 마당에 순화운동을 펼치지는 못할망정 근래 ‘80년대 향수’의 물결 속에 잊혔던 저속한 표현들까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시체 포육전 그만두라’라는 기사는 그간 ‘인체의 신비전’을 둘러싼 각계 언론의 긍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비판적 관점을 취한 부분이 많은 동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의 친위 부대가 떠오른다’는 발상은 본질을 외면한 개인적 느낌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시체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도 모두 시체가 될 테니까’라는 대목은 인체 전시의 긍정적 부분을 완전히 망각하고, 전시 기획자를 조롱하는 듯한 비열한 태도의 표현으로 느껴져 아쉬움이 남는다. 주재환/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왜 우리는 시체에 열광하는가 ‘시체 포육전 그만두라!’라는 글 잘 읽었습니다.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전’에 대한 여성 과학자 김재희씨의 비판적인 글이었는데요, 저 역시 그의 의견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즈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부하고 있을 당시 외국언론들과 여러 과학자들의 전시에 대한 비판적(사실 비판적이라기보단 상당히 격분한) 견해를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이런 시각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는 이 전시회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이해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보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총관람객 중 청소년 이하 관람객이 60%를 차지하며, 50%가량의 관람객이 전시회에 대해 교육적이었다는 평을 내렸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괴한 열풍에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 과학자 김재희씨의 글은 전시회가 정말 교육적인가를 되물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재희씨와 생각을 같이하는 다른 소수들의 의견도 함께 실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전시회에 대한 좀더 심층적 토론이 가능했을 터이고, 나아가 외국과 달리 왜 유독 우리나라가 이 전시회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은용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 독자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