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만난 독자 ㅣ허연식 (주)연경정보기술 대표이사
‘memo518’.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잊어서는 안 될 일을 언제부턴가 잊고 살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아무튼 그의 전자우편 ID는 그가 살아온 삶을 엿보게 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 5·18광주민중항쟁 속에 그가 우뚝 서 있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5·18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관련사업의 실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자신의 사업을 하지만, 5·18은 그의 젊은 날의 모든 것이었다. 어쩌면 광주라는 땅을 딛고 살았기 때문에 그것만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 그이기에 <한겨레21>을 바라보는 눈도 남다를 거라 여겨졌다. <한겨레21>은 2년 전에 5·18기념재단 기획부장으로 일할 때 정기구독을 했고, 현재까지 독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몇 기획기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주간지들과 차별화가 없고 일반 주간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자기 지향성을 선명하게 하고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 기자들의 치열함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홍구 교수님의 역사이야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흐름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구체적 인물들을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진보운동과 지식에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홍구 교수의 인기를 멀리 광주에서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한겨레21>의 지면을 인권에 대한 문제에 많이 할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민족문화·민중문화로 부려졌던 문화를 검증하고, 그것을 통해 의미 있는 문화를 복원하고 활성화하는 기획을 세워달라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한겨레21>이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광주대 사회복지학부에 재학 중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유명한 필화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친구와 함께 시화전을 열었는데 그가 쓴 시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광주민중항쟁이 몇해 지나지 않아 민감했기에 경찰의 촉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일로 인해 광주에서 시를 쓰던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게는 많은 재주가 있다. 그의 목을 통해 흘러나오는 육자배기 한 가락은 80년 광주를 느끼게 한다. 그가 왜 10년이 넘는 세월을 5·18에 보내야 했는지도. 이윤영/ 5기 독자편집위원

그는 <한겨레21>의 지면을 인권에 대한 문제에 많이 할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민족문화·민중문화로 부려졌던 문화를 검증하고, 그것을 통해 의미 있는 문화를 복원하고 활성화하는 기획을 세워달라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한겨레21>이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광주대 사회복지학부에 재학 중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유명한 필화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친구와 함께 시화전을 열었는데 그가 쓴 시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광주민중항쟁이 몇해 지나지 않아 민감했기에 경찰의 촉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일로 인해 광주에서 시를 쓰던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게는 많은 재주가 있다. 그의 목을 통해 흘러나오는 육자배기 한 가락은 80년 광주를 느끼게 한다. 그가 왜 10년이 넘는 세월을 5·18에 보내야 했는지도. 이윤영/ 5기 독자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