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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주 오래된 친구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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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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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울산대 정보통신공학부 조욱래씨

울산대 정보통신공학부 과방에는 <한겨레21>이 매주 전시돼 있다. 학생회관에 신문가판대를 설치하는 대학은 많지만, 과방에 한 종류의 잡지만 계속 진열돼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이 학부 학생 전체가 <한겨레21>의 ‘열혈독자’이기 때문일까?

그렇진 않다. 두달 전부터 과방 한구석에 설치돼 있는 조그마한 잡지 진열대는 조욱래(25)씨의 ‘작품’이다. “그냥 같은 대학생들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전시하게 됐어요.” 과 기획부장을 맡고 있는 조씨는 학생회 사업을 기획하며 학생들 마음속에 있는 무관심의 높은 장벽을 두드리고 싶었다. 자신이 구독하고 있는 <한겨레21>을 전시한 것은 그 작은 소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빈번한 ‘도난사고’였다. 전시를 해놓으면 과방에 혼자 있을 때 슬쩍 자기 책가방 속에 집어넣는 양심 불량의 학생들이 있었다. 어쨌든 조씨의 노력으로 울산대 정보통신공학부와 <한겨레21>의 ‘대화’가 시작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조씨의 잡지 사랑은 특별하다. 대학 입학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위해 구독하기 시작한 <한겨레21>은 이제 그의 일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시절, 사병은 잡지 정기구독이 안 된다는 말에 친한 하사관의 이름을 빌려 정기구독을 했다. <한겨레21> ‘금단현상’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주임원사와 대대장에게 들통이 났다. “북한을 좋아하는 안 좋은 책이니 보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래도 굴하지 않았죠. 어쨌든 제가 군대에서 잡지를 정기구독한 최초의 사병으로 기록될 거예요.” 이쯤 되면 그동안 ‘이주의 독자’란에 초대된 수많은 독자 중에서도 손꼽힐 만하다.

잡지에 불만은 없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재밌는 대답을 했다. “친한 친구는 술먹고 아무리 실수를 해도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 이해하게 되죠. 잡지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안 좋은 부분이 있을 때도 이해하게 됩니다.” 보통 “불만없다”고 대답하는 독자에게는 그래도 말해달라고 조르게 마련인데, 그의 이런 시원스런 답변을 듣고나니 더 캐물을 마음이 사라졌다. 그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난은 ‘쾌도난담’이다. 가식없는 비판이 마음에 들고 평소 김어준씨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른 잡지처럼 흥미를 위해 가식적인 기사를 내보내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의 꿈은 기자나 방송사 PD가 되는 것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친 조씨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키워온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낼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한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깁스를 하고 있지만 부지런한 천성 때문에 집에서 쉬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홈페이지를 대신 만들어 주는 사업을 벌였다. 이메일hooah@hanmail.net)을 보내면 언제든지 상담이 가능하다. 취재를 마칠 즈음 활짝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저 애인 없어요. 예쁜 여자분은 공짜로 만들어 드릴게요.”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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