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 확실하게 도와줘라
올해에는 유난히 추워서 가을옷을 입지 못하고, 곧바로 겨울옷을 입어서 날씨탓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 산 옷 입지도 못하겠다고. 하지만 이번 기사를 읽고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군요. 또한 화가 났습니다. 집이 없는 수재민의 재건축 비용을 집을 지어야만 준다니오. 그 이유가 돈을 먼저 주면 집을 안 짓고 다른 곳으로 가버릴 지 모르기 때문이라니. 삶의 터전과 가진 것 모두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합니다. 어느 누가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살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내년 아니 내후년에도 이런 비극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돈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누가 그 사람들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장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정말 누구를 위한 행정이고, 누구를 위한 재건축 비용입니까 수재민을 돕기 위해 마련된 경제지원인지 아니면 돈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경제지원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제가 낸 수재민 돕기 성금이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할 뿐입니다.
오진석
북한 핵구름에 답답한 마음
나는 진보정당이 입지를 확보해야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젊은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기존의 보수정당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주 <한겨레21>에 실린 ‘북한 대화 제의 거절한 미국의 속셈’을 읽은 뒤 답답하기만 했다. 미국은 대북포용정책을 고수하는 DJ정권 대신 이회창의 강경노선을 기대한다는 기사를 읽고 최근 미국의 호전적인 자세와 더불어 이 땅에서의 전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나는 또다시 진보정당 지지를 철회하고 집권 가능성 있는 보수정당에 표를 던져야 하는가. 분단이라는 역사적 문제 때문에 늘 뒷전인 우리의 민주화를 한탄한다. 언제쯤이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올까 끝없는 이러한 질문은 아마도 이 나라를 걱정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할 마음의 짐일 것이다. 이 짐을 하나씩 덜어주고 함께 고민의 보따리를 풀어보는 역할이 <한겨레21>이 이 땅의 청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일이 아닌가 싶다. 정명진/ 경남 사천시 벌리동 체첸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깨며 뉴스에서 모스크바 인질극을 접했을 때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걸고 인질극을 벌이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러시아와 체첸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신문에서 러시아와 체첸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읽고,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슬픈 독립군, 체첸 결사대’를 읽고 나서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꼭 체첸 독립군이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독립군처럼 느껴졌습니다. 체첸의 여전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진을 보고 악독한 범인이라기보다는 슬프게 싸우다 죽은 독립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나라의 차이는 단지 체첸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런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일 것입니다. 우리는 늘 강자의 입장에서 강자의 사고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숨은 강자들의 욕심과 횡포는 알지 못하고 강자들의 시각에서 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니까요. 하지만 강자의 힘에 억눌려 항상 나쁜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입장에서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보면 세상은 좀더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번 모스크바 인질극에 누가 동기를 제공했는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송현정/ 대구시 수성구 만촌2동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까닭 제가 듣는 NGO학 수업에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대해 토론한 날, 우리나라 사형수들의 얘기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한겨레21>을 보게 됐습니다. 수업시간에 토론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번 기사는 사형제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까닭은 기사에서 든 근거 외에도 많습니다. 먼저, 사형제도의 존속에서 ‘형 집행자의 인권’도 고려해야 합니다. 국가의 권력에 의해 ‘관제살인’을 대신 집행해야 하는 형 집행자는 사회적으로 용인됐건 되지 않았건 ‘살인’을 저지른 셈입니다. 이때 형 집행자가 갖게 되는 고통과 그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는 부작용 역시 인권 유린의 한 측면입니다. 또 형벌의 목적은 저지른 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응보’나 위험인자를 사회에서 제거하는 ‘격리’가 아닌 교화에 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사형은 절대 효과적인 교화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형제도는 단지 위험하다고 여기는 인물을 사회에서 제거해버리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형 집행을 기다리는 미결수들의 인권도 보호돼야 합니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처지긴 하지만 사형수들도 인간이기에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해 남아 있는 56명의 사형수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희/ 이대학보사 보도여론부 <독자만화>
나는 진보정당이 입지를 확보해야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젊은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기존의 보수정당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주 <한겨레21>에 실린 ‘북한 대화 제의 거절한 미국의 속셈’을 읽은 뒤 답답하기만 했다. 미국은 대북포용정책을 고수하는 DJ정권 대신 이회창의 강경노선을 기대한다는 기사를 읽고 최근 미국의 호전적인 자세와 더불어 이 땅에서의 전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나는 또다시 진보정당 지지를 철회하고 집권 가능성 있는 보수정당에 표를 던져야 하는가. 분단이라는 역사적 문제 때문에 늘 뒷전인 우리의 민주화를 한탄한다. 언제쯤이면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올까 끝없는 이러한 질문은 아마도 이 나라를 걱정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할 마음의 짐일 것이다. 이 짐을 하나씩 덜어주고 함께 고민의 보따리를 풀어보는 역할이 <한겨레21>이 이 땅의 청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일이 아닌가 싶다. 정명진/ 경남 사천시 벌리동 체첸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깨며 뉴스에서 모스크바 인질극을 접했을 때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걸고 인질극을 벌이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러시아와 체첸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신문에서 러시아와 체첸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읽고,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슬픈 독립군, 체첸 결사대’를 읽고 나서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꼭 체첸 독립군이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독립군처럼 느껴졌습니다. 체첸의 여전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진을 보고 악독한 범인이라기보다는 슬프게 싸우다 죽은 독립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나라의 차이는 단지 체첸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런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일 것입니다. 우리는 늘 강자의 입장에서 강자의 사고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뒤에 숨은 강자들의 욕심과 횡포는 알지 못하고 강자들의 시각에서 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니까요. 하지만 강자의 힘에 억눌려 항상 나쁜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입장에서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보면 세상은 좀더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번 모스크바 인질극에 누가 동기를 제공했는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송현정/ 대구시 수성구 만촌2동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까닭 제가 듣는 NGO학 수업에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대해 토론한 날, 우리나라 사형수들의 얘기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한겨레21>을 보게 됐습니다. 수업시간에 토론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번 기사는 사형제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 까닭은 기사에서 든 근거 외에도 많습니다. 먼저, 사형제도의 존속에서 ‘형 집행자의 인권’도 고려해야 합니다. 국가의 권력에 의해 ‘관제살인’을 대신 집행해야 하는 형 집행자는 사회적으로 용인됐건 되지 않았건 ‘살인’을 저지른 셈입니다. 이때 형 집행자가 갖게 되는 고통과 그로 인해 일어날지 모르는 부작용 역시 인권 유린의 한 측면입니다. 또 형벌의 목적은 저지른 만큼 돌려받아야 하는 ‘응보’나 위험인자를 사회에서 제거하는 ‘격리’가 아닌 교화에 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사형은 절대 효과적인 교화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형제도는 단지 위험하다고 여기는 인물을 사회에서 제거해버리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형 집행을 기다리는 미결수들의 인권도 보호돼야 합니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처지긴 하지만 사형수들도 인간이기에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해 남아 있는 56명의 사형수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희/ 이대학보사 보도여론부 <독자만화>

이성열 ddiry@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