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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화가 변하면 사회가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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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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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독자 l 사회과학 출판사 ‘이후’ 편집인 이재원씨

90년대 학생운동을 뒤돌아본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오습복반)의 편저자이자 <신좌파의 상상력>을 공동 번역한 이재원씨를 만났다. 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오습복반’, ‘copy-left 모임’과 같은 굵직굵직한 움직임들을 기억할 것이다. 얼마 전 논문을 끝낸 영문학 대학원생,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의 편집인, 사회운동과 문화연구의 결합을 시도하는 젊은 연구자. 그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여러 가지였지만 하나만 꼭 집을 수도, 그렇다고 방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현재 출판사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그는 출판계 이야기로 보따리를 풀었다. 그가 몸담은 이후출판사는 98년에 설립되어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오습복반 시리즈 이후로 독자층을 대학생에서 30대 초·중반으로 확대했고, 분야 또한 생태주의·페미니즘·정치경제학·예술로 폭이 넓어졌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그렇듯이 사회과학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이후는 한달에 2권 정도를 내며 5년 만에 50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다.

탄탄한 자금이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버티고 있고, 책 한권을 내고 문을 닫은 출판사가 부지기수인 출판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워낙 없는데다 저자 강연회와 같은 부대행사를 통해 유통업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가 지적하는 출판계의 고질적 병폐는 학술적인 고전들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번역되지 않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수익성이 없지만 학문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주요 서적들은 대학 출판사에서 번역하고, 여기서 수익성을 검증받아 출판에 따른 리스크를 최대한 줄인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없는데다 대형 출판사들이 수익성만을 고려하여 학문적 토대쌓기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문화연구를 사회운동과 결합하려는 그의 계획은 출판시장의 양적 팽창에 따른 질적 저하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담론의 유행을 타고 출판된 많은 서적들이 시장의 크기만을 키웠을 뿐이지 문화연구의 내실 있는 성장을 돕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또한 책의 사회 기여도와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편집인의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연구자로서 ‘문화혁명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문화운동 연구자이자 출판사 편집인인 만큼 이씨의 <한겨레21>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남달랐다. “문화면이 좀더 강화되었으면 해요. 해외문화 동향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문화가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거든요.” <한겨레21>의 이름 공모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는 그의 관심과 비판이 <한겨레21>의 큰 재산이 아닐는지.


홍창욱/ 4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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