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짬> 전 편집장 이상윤씨
“앞으로의 계획이요? TV 시청이죠, 뭐.”
‘생기는 것없이 바빴던’ 잡지 편집장일을 그만두고 주변에서 이제 뭐할 거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드니올림픽도 한창이니, 백수가 시간 보내기에는 아주 좋은 때란다. ‘문화건달’을 내세운 월간 <짬>의 전 편집장 이상윤(30)씨. 그의 겉모습은 <짬>의 문체처럼 건들거리고, 냉소적이고, 때로는 위악적이지만 그와 10분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삶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에 관심없는 철학도였던 대학 시절, 그는 시사잡지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잡지의 내용이나 그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짜증났기 때문이다. 정치문제는 그의 ‘무관심 1순위’였고 대학 시절 이씨의 일상은 대부분 술과 족구로 채워졌다. “전 말이죠. 학교에서 두 가지 기록을 갖고 있어요. 하나는 최장기간 족구장에서 떠나지 않고 게임을 한 기록, 또 하나는 최장기간 소주를 마신 기록이죠.” 그러나 사실 그는 내면에 영화에 대한 열정을 숨기고 있었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은 어릴 적부터 키워온 것이다. 1지망으로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한 이유도 영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재수를 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2지망으로 붙은 철학과에 다니면서도 극장에 걸린 영화는 모조리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연일 책상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는 ‘궁핍’을 견디지 못하고 영화기획사에 입사했다. <짬>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영화기획사에 다니며 알게 된 선배의 제안이었다.
시사잡지는 손에 들기조차 싫어하던 그가 아는 사람을 통해 <한겨레21>을 받아본 것도 그 무렵. 언뜻 읽기에도 다른 잡지보다 차별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들춰보고 말려던 잡지를 구석구석 자세히 읽게 됐고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오고 있다. 그가 가장 먼저 읽는 란은 ‘쾌도난담’이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들고 여러 사건들을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토론하고 합리적 대안까지 끌어내지 못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최근 막을 내린 베트남 캠페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이었다. 베트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잡지는 솔직해야 돼요. 예쁘게 포장만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죠. 일방적으로 독자들에게 의견이나 주장을 제시해서는 안 돼요. 전 잡지를 ‘대화’라고 봐요.” 원래 잡다한 할인쿠폰을 묶어내는 잡지였던 <짬>을 새로 시작한 것도 세상과 대화하고 싶어서였다. 잡지를 만들면서 그는 몇개의 원칙을 세웠다. 아마추어리즘에 충실할 것, 거칠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것, 어떤 것이든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다양성을 제시할 것. 돈에 쪼들리며 변변한 발송시스템도 없어, 잡지를 들고 배부처까지 힘들게 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후회없는 세월이었다.
이씨는 다시 영화를 하기 위해 <짬>을 그만뒀다. 족구와 소주에 미쳐 있던 과거에도, TV 시청에 미쳐 있는 현재에도 그의 욕망은 언제나 영화를 겨냥하고 있다. 이 ‘이유있는 백수’가 언제쯤 멋진 영화 한편을 들고 나타날까. 유현산기자 bretolt@hani.co.kr

이씨는 다시 영화를 하기 위해 <짬>을 그만뒀다. 족구와 소주에 미쳐 있던 과거에도, TV 시청에 미쳐 있는 현재에도 그의 욕망은 언제나 영화를 겨냥하고 있다. 이 ‘이유있는 백수’가 언제쯤 멋진 영화 한편을 들고 나타날까. 유현산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