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만난 독자 ㅣ 영화학도 구명진양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뒤 제 영화를 만들 거예요. 한 20년 뒤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이것저것 될 수 있는 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려고 해요.”
영화 얘기가 나오자마자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만큼 영화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다. 형제가 없는데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다니느라 친구 만들기도 어려웠던 까닭에 많은 시간들을 비디오와 함께 보냈다. 말을 배울 무렵부터 한창 예민한 사춘기를 거쳐 지금까지 줄곧 영화를 벗삼아 살았으니,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꿈은 너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영화학과 입시준비에 돌입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나 보다. 하나뿐인 딸이 곱게 자라 안정된 직업을 갖고, 좋은 데(?) 시집가주길 바란 부모님은 영화를 하겠다는 딸의 ‘비장한 선언’을 철딱서니없는 치기 정도로 여겼다. 덕분에 몇달간 치열하고 지루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다행히 현재 어머니는 어느 정도 설득한 상태지만, 아버지는 아직 그가 서울에 온 ‘본래 목적’을 모르고 계신다. “아빠는 제가 컴퓨터 배우러 여기(서울) 올라온 줄 아세요. 하지만 결국엔 이해해주실 거예요. 첨엔 그렇게 반대하시던 엄마도 얼마 전엔 점쟁이가 이쪽(영화)이랑 너랑 맞는다고 하더라며 은근히 힘을 주셨거든요.”
그가 <한겨레21>을 처음 만난 건 고3 시절. 남들처럼 논술준비를 위해서였다. “한겨레는 다르다”는 논술선생님의 말에 당시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보고자 사보게 되었고, 구독한 지 2년째에 접어들었다. 그가 느끼는 <한겨레21>의 ‘다름’은 무엇일까.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여운을 벗어내지 못하고 ‘아∼ 송종국 좋아’ 뭐 이러고 있었거든요. 아마 이건 대부분의 매체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근데 그때 <한겨레21> 한켠에선 이주노동자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고 얼마나 뜨끔하던지.” 소외된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건을 들춰주는 뜨끔한 충격을 사랑하고, 모기 얘기를 특집으로 다룰 수 있는 가벼움이 너무 유쾌하단다. 단, 정치에 워낙 우매(?)해서인지 정치기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고.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좀더 쉬운 기사를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를 물었다. 한참 뜸들인 뒤 이어지는 말. “사람들 속에 감춰진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지금은 밑천들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죠. <한겨레21>은 좋은 밑천 가운데 하나고요.” 20여년 뒤 <한겨레21>을 한 밑천 삼아 만들어질 따뜻한 영화 한편을 기대해본다. 구가인/ 4기 독자편집위원

마지막으로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를 물었다. 한참 뜸들인 뒤 이어지는 말. “사람들 속에 감춰진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좋은 영화를 위해 지금은 밑천들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죠. <한겨레21>은 좋은 밑천 가운데 하나고요.” 20여년 뒤 <한겨레21>을 한 밑천 삼아 만들어질 따뜻한 영화 한편을 기대해본다. 구가인/ 4기 독자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