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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3년 만에, 만나서 다행이야

‘비건 비긴’ 통권호 읽은 뒤 독자 모임… 비건 지향하는 이들과의 따뜻한 소통 이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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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09-14 15:18 수정 : 2022-09-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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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한겨레21> 독자 모임에 의사 이의철, 배우 손수현, 가수이자 작가 전범선이 패널로 나와 독자들과 대담을 했다.

2022년 8월24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 기자들이 모였습니다. 기자들의 얼굴에선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이날 저녁에 ‘비건 비긴’ 통권7호(제1424·1425호)를 읽은 느낌을 독자와 나누는 자리가 예정된 터였습니다. 독자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을 정리하고, ‘비건 과자’와 간편식 ‘비건 주먹밥’을 준비하다보니 벌써 독자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녁 7시, 3층 청암홀에 하나둘 독자들이 찾아왔습니다.

<한겨레21> 기자들이 독자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는 3년 만입니다. 2018년 ‘독자편집위원회3.0’(독편) 1기가 출범한 이후 <한겨레21>은 온·오프라인에서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왔습니다. 2018년 전체 독자 초청 모임에 이어 2019년엔 편집장과 기자들이 광주, 대구, 제주 등을 돌며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2019년 11월 서울 신촌에서 열린 독자·후원자 모임 뒤로 대면 모임은 멈췄습니다. 코로나19 탓입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번에 독자 모임을 다시 하게 된 계기는 ‘독자’ 덕분이었습니다. “이번 통권호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미리 독자 모임을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통권호를 준비하면서 비건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0명이 넘게 참여해주셔서 되게 감동받았어요. 비건 독자들은 어쩌면 이렇게 열정이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까 해서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이날 독자들을 맞이한 황예랑 <한겨레21> 편집장의 인사말입니다.

이날 모임은 무대에 오른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과 독자들의 활발한 참여 덕분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1부 행사에는 ‘비건 비긴’ 통권7호에도 등장한 배우 손수현씨, 가수이자 작가인 전범선씨,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의철씨가 패널로 나왔습니다. 세 사람 모두 비건이어서, 비건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질문에 깊이 있는 답을 해줬습니다.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전범선 작가는 “<한겨레21>에서 (비건 통권호를 만든다는) 연락을 줬을 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비거니즘이 단순한 문화나 취향이 아니라 여의도나 언론에서 정치적 의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손수현 배우는 “이렇게 많은 비건 지향인, 비건에 관심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있다고 초대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인사했습니다. 최근 책 <기후미식>을 펴낸 이의철씨는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통권호에 ‘식물성 식품에서도 권장섭취량 이상의 충분한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생리를 하는 여성의 경우 조금 더 신경 써서 챙겨야 할 부분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비건이어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주위에 증명해야 한다는 책무감을 느낍니다.” 이날 모임에 참석을 신청한 독자들에게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 건강과 관련한 질문이 이의철씨에게 처음부터 몰렸습니다. 2011년부터 채식하는 이씨는 생활습관의학 전문의이기도 합니다. “출혈이 있으면 철분이나 단백질을 보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콩류에도 철분이 많고 단백질이 풍부해요. 과거보다 육류 소비량이 15배 이상 늘었지만 빈혈은 여전히 있어요. 철분 결핍이 문제가 아닙니다.” ‘비건도 건강하다’는 것을 넘어 “비건(채식)을 해야 건강하다”고 이씨는 강조했습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오히려 만성질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겨레21> 기자들이 독자들에게 독자 모임 참가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비건도 건강하다? 비건 해야 건강하다!
알레르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채식을 시작했다는 배우 손수현씨는 비건을 하면서 가치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동물해방’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갖게 되면서 ‘비거니즘’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을 갈 때도 아이스박스에 비건 식품을 챙겨서 간다고 합니다. 비건 배우이기에 더 많은 인터넷 악플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비건 관련) 악플을 볼 때면 참담해요. 그래도 자주 보다보니까 좀 흘려듣게 되더라고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관계없이 제가 지향하는 가치가 옳은 방향이라고 믿어요.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빚지고 있다는 걸 언젠가는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패널들 간에 ‘배양육’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배양육은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도축 없이 만들어내는 고기입니다. “순수하게 건강적 이유”에서 식단을 바꿨다는 이의철씨는 배양육에 관해 건강 측면에서 우려를 표했습니다. 반면 전범선씨는 매년 도살되는 동물 수를 하루라도 빨리 줄이려면 ‘금연초’처럼 배양육이라도 먹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양에서 만든 ‘비건’이라는 신조어보다 정신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인간의 건강을 살리는 것과 기후위기에 맞춰 지구를 살리는 것, 동물을 살리는 것이 다 합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채식하지 않는다고 미안해 말아요”
2부에서는 <한겨레21> 기자들이 취재 후일담을 나눴습니다. 비건 통권호 취재 과정에서 페스카테리언(페스코, 생선·해산물, 달걀, 우유·유제품 허용) 한 달 체험에 도전한 손고운 기자는 “비건이나 채식 문화를 알고 있었다고 착각했다”며 “특히 비건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윤리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과정이 불편했어요. 가장 바뀐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비건 관련 농담을 하면 같이 웃었는데 이제 웃지 않아요.”

돼지농장에서 일했던 이정규 기자는 농장에서 들은 돼지 울음소리가 무서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덥고 좁은 농장 안에서 돼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느꼈던 감정이 기사를 쓰면서 올라왔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기자는 이번 취재를 마치고 고기 소비량을 상당량 줄였다고 합니다. “기사를 쓰고 나서 돼지들이 느낀 고통이 전이됐던 것 같아요. 이후 (혼자 밥 먹을 때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있어요.”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독자 이동우씨는 “채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이씨는 “통권호를 만드느라 고생한 기자들에게 감사하다”며 “기획 자체가 충분히 훌륭했다”고 격려해줬습니다. 통권호를 읽은 뒤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참여 신청을 하고 모임에 나온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채식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다채롭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며 “여의도의 기성 질서에서 기후와 동물권, 비거니즘을 주요 어젠다로 올리는 일은 어렵지만, 치열하게 발버둥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냉정하게 비판한 독자도 있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의 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서지민씨는 비건 통권호에 실린 글들이 “내용이 겹치는 것이 많고 인터뷰 기사의 비중이 커서 아쉽다”고 했습니다. 다만 인도와 홍콩을 다룬 기사는 좋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책이나 기사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비건 관련 추천 영상과 웹페이지를 소개한 부분도 재밌게 읽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비건을 시작한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비건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를테면 회식하거나 지인을 만날 때 어떻게 설득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전 질문을 남긴 직장인 김수빈씨는 호기롭게 ‘페스코’에 도전했지만 얼마 못 가 실패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갈비탕과 순댓국밥집을 데려가던 팀장님의 호기심과 걱정의 탈을 쓴 ‘비건을 왜 하느냐’는 질문과 잔소리 세례에 무너졌어요.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어요.” 박종민씨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건 식단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설득보다 ‘백문이 불여일식’
전범선씨는 백문이 불여일‘식’이라고 조언합니다. 무조건 설득하려 하면 싸우기 쉽다는 겁니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일단 맛있는 것(비건식)을 먹게 해주세요. 다음엔 이렇게 먹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비건 친구를 한 명이라도 만들어보세요.”

손수현씨도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제가 먹을 것을 싸 들고 다니면서 잘 먹고 다니니까 다들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주먹밥도 귀엽게 나오니까 물어보면서 맛도 보고. 그런 식으로 스스로 잘 먹고 잘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독자가 이번 모임에 참석을 희망한 이유로 비건을 지향하는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꼽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석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대의 힘을 얻었기를 바랍니다. ‘비건 비긴’ 통권호 발간 이후, 제주도 말 생크추어리(보금자리)를 다룬 기사를 보고 소액 후원을 하고 싶다고 연락한 독자 등 다양한 방식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비거니즘, 동물권, 기후위기 등의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보도하겠습니다. 독자들과 관련 의견을 나누는 별도의 채널도 만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 지구를 지켜라 독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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