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l 사회복지사 최윤정씨
특이체질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병원은 될 수 있으면 가고 싶은 않은 곳이다. 직접 입원했거나 간병을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소독약 냄새가 자아내는 음울한 분위기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병원의 잘못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활기차고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서울대학병원 의료사업실은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사회복지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의료사회사업에 대해 홍보 많이 해주세요.” 최윤정(25)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주문부터 한다. 의료사회사업은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경제적인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활동이다. 의료사회사업가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독지가와 연결해주거나 환자와 보호자의 상담업무를 담당한다. 사회사업학과를 나온 최씨는 지금 의료사회사업에서 전문성을 쌓기 위해 수련 중이다. 돈 때문에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에게 치료의 길을 열어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그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 대학 시절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다. “대학교 3학년 때 이미 의료사회사업을 연구하는 학회를 만들었죠.” 복지관 봉사활동 등을 틈나는 대로 해왔지만 결국 자신의 길은 의료사회사업이라 결론내렸다.
최씨가 <한겨레21>을 구독한 이유도 다른 주간지보다 복지 관련 기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는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민감해야 한다. 그가 최근 읽은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405호 이슈추적 ‘이미 공창은 존재한다’이다. 대학 시절 윤락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어느 활동가의 특강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매매춘의 실태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기사를 통해 희망 없이 살아가는 매매춘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후회했던 적이오? 수도 없이 많죠.” 혹시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낀 적은 없냐고 묻자 당연한 듯 이렇게 대답한다. 미국에 유학가 있거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자신이 뒤처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래도 최씨는 앞으로 그가 가야 할 길에 추호의 의심도 없는 것 같다. 그의 유일한 꿈은 의료사회사업을 제대로 해내는 일이다.
수능시험을 보고 고민하던 차에 단순히 “전망 있다”는 친구의 한마디에 선택한 사회사업학과. 선택은 우연이었으나 그가 앞으로 해내야 할 일들은 필연인 것 같다. 복지관에서 치매 노인들의 배설물을 치우면서, 혐오감보다는 우리 복지시스템의 문제를 생각한 스물다섯살의 젊은이. 병원을 나서면서 그가 갑자기 부러워졌다. 햇살 가득한 대학로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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