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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403호를 보고

405
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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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 연구를 통해 만난 한홍구

저는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제 고향이고 직장이기도 한 시골에서 전래민요와 생애사를 채집·기록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겨레21>에서 한홍구 교수의 글을 읽고 감격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걸 읽고 나서, “아 그 할머니가 한 말이 일제 때 보국대가 아니고 이승만 때 국민병이었구나.” 뭐 이런 사실들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80년 광주라든지 독립운동사 같은 걸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은 운동권이었지만, 사회에 나와 지역사 쪽을 깊게 공부하고 고향 사람들 생애사를 공부하다 보니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고, 잘 읽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글을 읽다 보니 박노자씨 팬이 많던데, 전 박노자님도 좋지만 한홍구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언젠가 책으로 나오면 꼭 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홍구님은 서울에서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현대사를 개괄하고 있지만, 저는 충청북도의 인구 6만이 안 되는 작은 군 단위에서 현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거창하지만 한 10년 지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학교교육에서 지역화라는 것이 지금 6,7차 교육과정에서 많이 떠들어대지만 실제로는 내용이 너무나 빈약해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이제라도 면담·녹음·정리를 해서 자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팬/kaljabi@edunet4u.net

386의 과도한 의욕


이번호 논단 ‘386과 아바타’를 읽고 몇 가지 문제를 느꼈다. 386이 허리 역할을 하면서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 386의 공허한 마음과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등 ‘386세대는 이러이러한 속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한계가 보인다. 그러나 같은 세대면서도 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영어열풍·한류열풍 등 지나치게 한국사회를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그네들의 의욕이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뭉뚱그려 표현되고 싶지 않다.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기성세대의 높은 진입장벽에 저항하기 위해 이른바 ‘386’은 사회를 정신없이 몰아가는 행동대장들이다. 양식 있는 386은 죽고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계급상승과 출세지향을 꿈꾸는 386이 이사회를 이끌고 있어 분할만 보인다.

민족사랑실천연대/ols@middlekorean.com

선생님의 절망을 아는가

이병식 선생의 사연을 담은 하종강의 휴먼포엠은 눈물겨운 기사였다. 사실, 선생님이란 가장 힘든 직업이 아닌가? 자기 자식 두명을 가르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교실에 사오십명,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앉혀 놓고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나는 선생님을 매우 존경한다. 게다가 잡무는 얼마나 많은가. 갈등 속에서 교단을 지켜나가는 선생님들이 받는 압박감과 절망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병식 선생의 ‘현실도피적’인 행동은 참으로 과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의 발언처럼 버스 기사가 선생이란 직업보다 한수 아래의 직업이어서가 결코 아니다.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소명의식이 있을 것이다. 교단을 나서서 다른 직업을 택해야 했던 그의 마음에서 움트는 죄책감, 번민을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의 본분이라 생각해온 옷을 벗어던지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괴로움은 직업의 귀천을 떠나 누구라도 따라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과감히 교직을 떠나는 모험을 하지 못하는 여러 선생 여러분을 나는 그래도 존경하고 귀히 여긴다. 그분들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찌 될까….

한경민/khs0319@hotmail.com

김산의 사진을 보며 울었다

이번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아리랑의 최후를 아는가’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읽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김산, 그는 당당하고 훤칠한 젊은이였습니다. 웃는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또한 또렷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열정 가득한 눈매기도 했습니다. 그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갔던 나이가 33살…. 예수가 그 나이에 십자가를 짊어졌다고 했던가요? 내 나이 35살…. 바다 건너 다른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한계와 못남을 날마다 깨달으면서, 마음고생하며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33년의 짧은 생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가 옳다고 믿는 삶과 신념을 위한 투쟁을 읽으면서 두렵고도 부러웠습니다.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노라고 스스로 밝힌 그가 어찌 그런 삶의 투쟁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걸어갈 수 있었는지. 그가 웃고 있는 낡은 흑백 사진을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정말 그는 젊은이였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젊은 그였습니다.

푸른달/purundahl@hanmail.net

독자편지

이성열 ddi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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