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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 좋은 연애시 한편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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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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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l 이미경 의원 보좌관 조한기씨

사진/ (김종수 기자)
참 착한 사람이다. 그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직업이 정치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다. 이미경 의원 보좌관으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약중인 조한기(37)씨. <한겨레21>의 맹렬 독자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를 만날 때만 해도 바쁜 사람이니 ‘빨리 치고 빠지자’라는 생각만 하였다. 그러나 조씨는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아주 흔치 않은 유형의 사람이었고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한겨레21>이오? 의정 보좌 업무의 참고서죠.” 일단 주간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런 모범답안을 내밀었다. 특히 정치면 기사들을 읽으며 정치적 감각을 익히고 방향을 잡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애정만큼 비판도 해달라고 하자, ‘본론’이 나온다. 문화관광위에서 일하다 보니 문화면 기사들을 열심히 읽게 된다고. 하지만 <한겨레21> 문화면은 너무 현상적인 면만을 다루는 것 같단다. 물론 문화계의 여러 정보들도 중요하지만, 이면에 있는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 문화정책의 측면도 기획해달라고 주문한다. “물론 이해하지만 깊이 있는 취재가 보고 싶어요.” 이 말을 하며 쑥스러운지 또 웃음을 터뜨린다. 최근 가장 인상깊게 본 기사는 민주당 경선을 다룬 ‘만리재에서’라고. 광주에 가보지 못한 자신도 마치 광주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문화관광위에서 지난해까지 조씨는 언론개혁 관련업무에 매진해왔다. 앞으로는 문화상품의 유통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을 작정이다. 음반분야만 해도 이른바 ‘길보드’는 많이 사라졌지만 불법유통, 불공정거래, 메이저 유통사의 ‘장난’ 등 왜곡된 구조가 산재해 있다. “문화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더 시급해요.”

그의 과거는 좀 엉뚱하다. 대학시절만 해도 조씨는 문학회 회원으로, 시인을 꿈꿨다. 시인지망생이던 그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에 뛰어들어 문화운동가로 변신한다. 2년 전 마침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화운동을 할 때는 글 다듬기, 어린이책 만들기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좋아하는 술값을 벌어야 하는 고된 생활이었다. 정치로 옮겼을 땐 모든 여건이 나아졌으나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글 하나를 써도 예전 운동할 때처럼 주장만 담는 성명서를 쓸 순 없잖아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써야죠.”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늘 문화운동가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와 운동의 교류, 그게 정말 중요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좋은 연애시 한편 쓰는 거란다. 어디에 있든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움직이는 자리에 있고 싶다는 그에게서 80년대의 잔영이 보인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고 습작을 꽤나 많이 했다는 조씨. 그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만났다기보다는 한명의 시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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