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괭이부리말 아이들> 김중미 작가가 ‘구독나눔’ 하는 ‘창작집단 도르리’의 책상 위 책꽂이에 <한겨레21>이 놓여 있다. 김중미 제공

<한겨레21> 후원제 1년을 맞아, 창간독자이자 후원독자로서 편지글을 보내온 김중미 작가. 김중미 제공
나는 오랜 친구를 좋아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기보다 오랜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21>과도 그런 관계인 것 같다. 그런 친구라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내가 지역 청년들에게 <21>을 소개한 이유다. 1994년 창간 때부터 계속 모아두던 <21>을 2001년 강화로 이사할 때야 버렸다. 그때도 인덱스를 붙인 잡지는 강화까지 싸들고 왔다. 그러다 한 7년 전 더는 쌓아둘 곳이 없어 다시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지금 7년 치 <21>이 또 쌓여 있다. 그렇게 아끼는 <21>과 소원한 때도 있었다. 탐사보도가 연성화된 느낌을 받았던 때다. 그래서 주마다 찾아오는 <21>을 건성으로 보고 넘기기도 했다. 그러다 2016년, 그 거리감을 다시 허물어준 기사를 만났다. ‘가난의 경로’였다. 그때부터 <21>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이 탔다. <21>이 몇 개월, 혹은 1년, 혹은 더 긴 시간을 탐사한 기사를 낼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지난해 <21>은 봄과 가을 두 차례 걸쳐 보호대상 아동의 보호 종료 이후를 다뤘다. 내게는 정말 단비와도 같은 기사였다. 2006년께부터 아동복지시설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자립을 돕게 되었다. 만 18살에 어른이 된 이들은 허허벌판으로 내몰린 채 자립과 독립을 강요당했다. 거기에 더해 부양의무제와 사회복지 통합전산망은 청년들을 홀로 세우기는커녕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양의무제 폐지를 이야기해왔지만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웠다. <21>의 ‘만 18살 자립’은 보호 종료 청년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보육시설에서 퇴소한 우리 청년들과도 함께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계기로 우리 청년들도 자신의 존재를 좀더 당당하게 드러내고 후배들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청소년 자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준 것도 좋았다. 우리 공부방에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얼마 전 여러 언론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빌거, 휴거, 이백충, 삼백충’ 같은 말을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계급 갈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막상 서민 지역에 사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그런 말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불평등과 혐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자극적일 때 약자에게는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하고 혐오를 강화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호(제1304호) ‘임대아파트 옆 과소학교’ 기사도 좋았다. 2년 전 <행운이와 오복이>라는 동화책에서 같은 주제를 다룰 만큼 관심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21>이 더 낮고 예민하고 깊어지길 나는 내 친구 <21>의 시선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니 더 낮아지고 예민하고 깊어지면 좋겠다. 사심 어린 부탁도 있다. 농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한국 언론에서 농촌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21>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사에서조차 소외되는 농촌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 지금 내가 사는 강화에는 난개발을 비롯한 환경 문제, 일자리,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여성, 노인, 청소년 등 주목해봐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결혼이주여성, 계약직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도 좀더 주목해주면 좋겠다. 원고지 7장이라고 했는데 쓰다보니 할 말이 자꾸 떠오른다. 어쩌겠나. 오랜 친구에게는 부탁할 일도 고마움을 표할 일도 많은 게 당연한 일이니.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