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ㅣ문학평론가 고영직씨
올해로 10년째 문학평론가라는 명패를 붙들고 있는 고영직(35)씨. 그는 가방끈 짧은 평론가다. “웬만하면 대학원 가지 그랬어요?” 그의 천진난만한(30대 중반에도 아이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에 좀 무례한 질문부터 들이밀었다. “언제고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뭐 꼭 그래야 되는지… 아는 만큼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그의 ‘아는 만큼만 쓰는 글’을 몇편 읽은 적 있는데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치밀한 글이었다.
고씨는 애초에 소설을 쓰고 싶어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고고학자나 지리학자를 꿈꾸던 고등학생을 변화시킨 건 형의 죽음이었다. 죽음이 남긴 엄청난 충격은 그를 문학의 길로 끌고갔다. 그러나 대학시절엔 소설 습작을 몇편 쓰면서 자기비하에 헐떡여야 했다. ‘재능의 부재’를 한탄하던 그는 평론가로 방향대를 틀어 92년 <한길문학>에 정식 등단했다. 하루 살기도 막막한 젊은이가 직업 평론가가 된다는 것은 날마다 한두끼 정도를 굶을 각오를 한다는 의미다. 그가 술을 산다고 하면 사정을 빤히 아는 후배들은 복권 당첨이라도 된 듯 화들짝 놀란다. “IMF 사태가 터진 직후인 98년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한달 평균소득을 따져봤더니 25만원이더라고요.” 두살박이 아들을 키우는 가장이 그 돈으로 어떻게 분유값을 댔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갓집 신세를 좀 졌죠.” 이렇게 말하면서 낄낄대는 그의 표정엔 따끔거리는 아픔이 배어 있었다.
이 무모하고 순수한 평론가가 벌인 일들도 많다. 먼저 Art&Study(www.artnstudy.com)라는 교육사이트의 사무국장이 그의 ‘부업’이다. 기존 교육사이트가 지식전달을 위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사이트는 김지하·신경림·박범신 등 중견 문학인들의 사이버 강의를 주로 한다. 우리 문화의 공감대를 넓혀보자는 취지에서 그와 동료들이 까마득한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만들어낸 사이트다. 특히 30대 주부들이 최근에 회원으로 많이 가입하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민족문학작가회의 ‘젊은 작가 포럼’에서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총무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주간지를 구독하는 건 의무가 돼버렸다. <한겨레21>에선 특히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기획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자신의 활동영역과도 부합하지만,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근성이 맘에 들었단다. 앞으로 월드컵에서도 색깔 있는 보도를 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월드컵을 통해 문화 전반을 바라보자는, 고씨 다운 당부다.
평론가로 등단한 지 10년이 되는 올해에는 평론집을 한권 낼 생각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팔리진 않겠지만” 하고 농담을 던지자 “사방에서 책 내자고 난리에요”라는 허풍으로 응수한다. 그 허풍이 제발 현실로 전화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