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한겨레21> 후원 독자 5명을 만났다. 조윤영 기자
바빠서 제1254호 표지이야기 ‘<한겨레21> 후원제를 시작합니다’를 늦게 본 게 아쉬워 화가 날 정도였다. 기회 되면 펀드 모으듯 <21>을 후원하는 재미가 생겼다. 마이너스통장(신용한도 대출)을 덜 메우고라도 <21>을 후원한다. 부모님은 여윳돈이 생기면 빚을 갚으라고 하지만 100이 있으면 절반은 날 위해 투자할 거다. 남들이 보면 날 바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가치 있는 소비다. 송영옥 ‘암수 범죄’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암수 독자’ 같은 존재였는데 후원 독자로 참석하게 돼 민망하다. 2001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사회를 잘 몰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도 선거권이 없어 별 관심이 없었다. 이후 <한겨레>와 <21>을 번갈아 보고 다른 매체도 구독하고 있다. 지난 1월 여행을 가서 <21>을 봤는데 좋은 기사를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사를 쓰는 매체를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다른 매체는 구독을 중단했다. <21>은 폐간하지 말고 기사만 써달라. 박선영 직장에서 <21>을 받아 보고 집에서도 <21>을 또 본다. 주말에도 집에서 <21>을 봐야 하니까. 경기도 광주에 살 때는 <21>이 제때 오지 않았다. 2주 치가 한꺼번에 오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21>을 보는데 다행히 제때 온다. <21>에 바라는 건 별것 없다. 없어지지 않는 거다. 이미옥 전문 건설업체에서 일하다보니 갑을 문제, 원·하청 공사 등과 관련된 기사에 공감한다. 때로는 ‘우리도 갑이었구나’라며 반성했다. 제1261호 표지이야기 ‘아파도 일한다’도 충격적이었다. 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도 잘 몰랐다. 비슷한 때 같은 회사에 다니던 직장 동료가 아파서 병가를 쓰게 됐다. 당시 회사에도 선례가 없었는데 <21>이 큰 도움이 됐다. 근로기준법에 병가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우리 스스로 기준을 정하면 그게 회사의 기준이 될 거라고 설득했다. “‘병가’ 기사 보고 회사에 제안” 왜 <21>을 후원하게 됐나. 양현주 부채의식인 것 같다. 연년생으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중학교 2학년 삼 남매에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회적 환경을 물려줬다는 미안한 마음에 <21>을 후원하게 됐다. 삼 남매가 <21>을 보고, 나중에 삼 남매의 아이들이 <21>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있어달라. 이은주 <21>에 힘이 되고 싶었다. 주변에서 <21>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털이나 소셜네트워크에도 악성 댓글들이 달린다. 기자들이 냉철하게 판단하고 분별 있게 행동하더라도 감정적으로 힘들 거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앞으로도 기회 있으면 더 후원할 거다. 뒷날 내 딸이 자기 자녀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잡지가 돼달라.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되 불필요한 말은 흘려들으면서 갈 길을 가달라. 송영옥 고립된 느낌이 든다.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를 2004년쯤부터 했다.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모인 커뮤니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의당 당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몸담고 있을 데가 없다. 진보적이었던 친동생도 이제는 진보 매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기사를 쓰는 정통 언론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쉽게 뉴스가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열되면서 어느 곳도 지지할 수 없고, 어느 곳도 플랫폼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 정치색을 빼더라도 <21> 기사는 이해하기 쉽고 질이 좋다. <21>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선영 다들 <21>을 봤으면 좋겠다. <21>을 보고 나서 직장 동료들에게 빌려준다. 그다음에 단골 미용실에 <21>을 갖다준다. 좋은 기사니까 함께 나눠 읽자는 마음이다. 다행히 미용실 주인이 좋아해준다. <21>을 읽을 때 언뜻 봐도 읽고 나면 속상할 것 같은 기사는 일단 넘긴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빌려주기 전 꼼꼼하게 읽어보면 굉장히 감동적인 기사가 많다. 이 기사를 안 봤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기사들은 미용실에 갖다주기 전 메모지를 붙여놓는다. 메모지로 표시해둔 기사는 꼭 읽어보라는 거다. 미용실 주인이나 손님들이 시간 날 때마다 기사를 볼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잘했다 여긴다. 이미옥 후원제가 도입되기 전 혼자 후원제 같은 방식을 고민해봤다. 크라우드펀딩처럼 자금을 모으는 단체가 많으니까. <21>이 후원제를 도입한다면 가장 먼저 동참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뒤늦게 기사를 봐 아쉬웠다. 정기·일시 후원을 하면서 이체 종료일을 정하지 않았다. 아니, 정할 수 없었다.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21>을 후원하고 싶다. (웃음) <21>은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갑을병정 사회에서 ‘정’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사에 실어주니까 더 힘이 돼주고 싶다. 불편한 기사도 있다. 나이 들면서 보수적이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불편한 기사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찬찬히 곱씹는 심층 기사들이었다. 심층 취재를 하려면 힘이 많이 들지 않겠나. 그래도 계속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대신 소리 내달라.
후원 독자들에게 왜 <한겨레21>을 후원하는지 물었다. 조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