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뉴스의 홍수 시대다. 갈수록 더 많은 뉴스가 생산되고 소비된다. 디지털 영향이 크다. 그중 신문의 머리기사, 방송의 헤드라인, 잡지의 표지 이야기는 딱 하나다. 포털의 톱에 걸리는 기사도 제한적이다. 주목받는 기사도 있지만 묻히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왜 이리 작게 썼냐, 왜 이리 크게 썼냐는 원망과 항의를 들으면서,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기사 가치를 판단하는지 답 없는 의문을 품곤 한다. 편집국이나 보도국, 뉴스룸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된다는 게 교과서적 답변이겠지만 충분한 설명은 못 된다.
쓸데없는 서설이 길어졌다. 엊그제 신문 안쪽에 처박힌 단신 기사 하나를 보면서 문득 다시 든 생각이었다. ‘4인 가구 월 142만4752원 못 벌면 내년에 생계급여 받는다’는 긴 제목의 기사는 왜 더 크게 다루지 않았을까? ‘최저생계비’로 더 친숙한 ‘생계급여 최저보장수준’ 결정 기사가 왜 묻혔는지 아쉬워서 던지는 질문이다. 그나마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크게 다룬 축이다.
생계급여 최저보장수준은 우리나라 복지 수혜자와 수준을 정하는 기준선이다. 어찌 보면 ‘최저 복지선’이다. 이 한마디로 그 중요성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면, 기준선에 따라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 수백만 명의 삶의 풍경이 달라진다고 말하면 어떤가. 그 기준선이 4인 가구는 월 약 142만원, 1인 가구는 약 53만원이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두 자녀를 둔 부부가 월 143만원의 소득이 있다면 생계급여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141만원이라면 1만원을 받는 식이다. 지난해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최저임금(월 약 180만원, 2020년 기준)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무 논란 없이 지나쳤다.
4인 가구(이하 동일)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해보다 2.94% 올랐다는 최저생계비에 더 유감이다. 생계급여 최저보장수준은 ‘기준 중위소득’(소득 순서로 가구를 줄 세웠을 때 가운데 위치)의 딱 30%였다. 이마저 소수점 이하에서 반올림한 수치다. 법엔 “생계급여 선정 기준은 기준 중위소득의 100분의 30 이상으로 한다”(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8조 2항)고 돼 있다. 따라서 ‘30% 이상’, 어느 수치나 가능하지만 가장 인색한 수준으로 결정됐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의 목표를 구체화하는 기준선은 왜 하필 30%여야 하는가? 35%, 아니 50%는 될 수 없는 걸까? 7년 전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가계동향조사 또는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의 38~40% 수준이었다. 무슨 말인가? 최저생계비가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이 또한 유감이다.
올해 중위소득 산출에 가계동향조사를 또 쓴 것도 씁쓸하다. 곧 개편을 앞둔, 더구나 거듭된 표본 교체로 신뢰도마저 떨어진 조사 아니던가. 실제 소득의 분포와 수준을 더욱 잘 보여주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교체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이를 포함한 중위소득 산출 방식 개편 방안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산출한 중위소득이 가계동향조사보다 40만원쯤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썼다면 최저생계비 지원액과 대상자가 더 많아질 터다. 더욱 유감인 것은 현 정부 들어 지난 3년 동안 평균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이 2.1%로 박근혜 정부의 3.4%보다 낮다는 사실이다. 기대 배반이다.
다소 어려운 용어와 어지러운 숫자 뒤에 숨은 ‘최저 복지선’은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2010년 참여연대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그 수준이 너무 낮아 최저생계비는 최저생존비에 불과하다.” 그 ‘상대적’ 수준은 9년이 지났지만 더 나빠졌다. 관심은 그때보다 덜하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