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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후원제가 미래 열어가는 길

대구에서 연 두 번째 지역 독자모임 “더 좋은 저널리즘 함께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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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6 12:2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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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 저녁 대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한겨레21> 독자모임.
“도대체 대구·경북에서 누가 <한겨레21>을 보나 궁금해서 왔어요.”

서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진보 성향 시민이 드문 대구에서 <한겨레21>(이하 <21>) 두 번째 지역 독자모임이 열렸습니다. 최고기온 34℃, 초여름 ‘대프리카’를 실감할 수 있는 5월24일. 류이근 편집장과 변지민 기자가 대구역 인근 한 카페에서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보수 심장’의 불타는 금요일

‘대체 누가’라는 궁금증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주간지 독자가 멸종 위기인 요즘 세상에, 그것도 대구에서, 불타는 금요일 저녁에 15명이나 모인 것 말입니다. 이날 독자모임에 참석한 김동은씨는 “대구에서 진보적 생각을 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정치적 난민”이라고 했습니다. 식당에서 주변 사람들과 밥 먹다 진보 시각을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지는 걸 느끼기 일쑤라고도 했고요.

이대영씨는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모임을 찾았습니다. “보수의 심장, 구미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씨는 “여기선 <한겨레> <21>을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한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분석적인 기사가 많아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계속 보고 있다고 합니다.

김미경씨는 세월호 목걸이를 차고 왔습니다. 중학교 사회교사인 김씨는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자는 서명운동을 시민단체와 함께 5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라”고 했던 자신도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에 ‘공범’이었던 것 같은 죄책감에 서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술에 취한 노인들이 와서 훼방 놓고 삿대질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김씨는 “이 척박한 곳에서 시민운동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수한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또 “진실이 온전히 밝혀질 때까지 <21> 표지에서 세월호 리본을 떼지 말아달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후원 요구, 더 뻔뻔해져라

대구에서 독자모임까지 올 정도면 사실 <21>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층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조차 최근에는 <21>을 자주 못 읽는다고 합니다. 경북 성주에서 온 최용환씨는 “예전에는 <21>을 닳도록 봤는데, 요즘은 포장 비닐도 못 뜯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내가 일하는) 공장에 가져가면 주변에서 서로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본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구태씨는 <21> 창간 때부터 구독해 한 번도 끊은 적이 없는 독자입니다. 대학생 딸과 함께 모임을 찾은 이씨는 “<21> 영업자들은 구독 요청을 할 때 <시사IN>에 비해 절박함이 덜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자들 의견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했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했습니다.

<21>도 절박한 건 사실입니다. 두 달 전 시작한 후원제에 그 절박함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류이근 편집장은 이날 모임에서 “후원제를 시작한 뒤로 잠이 잘 안 올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매달 누군가 1만원이든 2만원이든 보내주는 후원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진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분들이 저희한테 걸었던 기대, 희망, 그런 것들이 어깨를 짓누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이날 모임의 독자들은 “더 뻔뻔해져라”고 권했습니다. <한겨레>와 <21> 창간독자인 이종근씨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독자도 줄고 광고 수익도 줄어드는 환경이잖아요. 언론사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뻔뻔하게 후원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건 뻔뻔한 게 아니고, 기자와 독자가 힘을 합쳐서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후원제는 미래를 내다보고 가야 할 유일한 길이에요.”

사실 <21>은 지난 두 달간 기사를 통해 거의 매주 후원제를 알리고 있습니다. 충분히 절박하고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자들도 놀라게 합니다. 그건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시민 참여로 만들어진 <한겨레>의 역사성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참고로 <한겨레21>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드는 주간지입니다). 이종근씨는 “예전에 대구에서 <한겨레>가 지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독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독자 배가 운동도 하고, 새벽에 나와서 신문에 홍보지를 넣어 돌리기도 했다”며 “<한겨레>와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털어놨습니다.

갑·을 떠나 진실에 다가서길

<21>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의견을 보탰습니다. 김동은씨는 “언론사의 절박함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절박함도 중요하다”면서 독자와 후원자에게 ‘<21>이 아니면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매체가 없다’는 절박감이 들도록 더 애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씨는 “후원제로 간다면 <한겨레>에 애정을 가진 독자들을 실망시켰던 최근 몇몇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습니다. <한겨레> 독자들이 기자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잣대가 높기 때문에 실망시키지 않는 행보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쓴소리는 이어졌습니다. 정정분씨는 콘서트 표를 끊어놨는데 포기하고 이날 모임에 참석한 독자입니다. 그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21> 등 진보 언론에서 보수 언론과 같은 방식으로 진보 진영 정치인 등을 공격할 때 화가 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신중하게 보도해달라는 당부로 이해했습니다.

이대영씨는 다른 분들과 또 다른,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습니다. “지금 언론 시장은 기형적이라 마케팅이 더 중요해요. ‘좋은 기사, 후원 요청’만을 무기로 가져가기엔 부족할 수 있어요. 너무 깨끗한 것만 고집해선 살아남기 힘들어요. 일단 살아남아야 기사도 쓰죠. 진보 언론사들이 후원에만 의지하지 말고 진짜 살아남는 게 뭔지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독자들과 만나면 늘 느끼는 게 있습니다. 기자들과 소통에 목말라 있다는 겁니다. 별달리 준비한 프로그램도 없이 독자들과 만나서 어색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이날 모임은 저녁 6시30분에 시작해 밤 9시30분까지로 예정했는데, 한 시간을 넘겨 10시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천병렬씨는 <21> 기자들이 독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에 “권력이 시민 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보여서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21>이 딱히 권력은 아니지만, 언론이 시민들로부터 실시간 감시와 비판을 받고, 독자들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변한 시대상에 만족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천씨는 “거짓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 돈 받고 기사 쓰는 언론이 아니라, 팩트를 검증해주는 언론이 있어야 시민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문영씨는 “(좋은 언론에) 후원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광고 수익을 위해 재벌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보는 것보다, 제대로 된 언론사에 후원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길게 보면 비용은 결국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독자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자본에 예속되지 않은 <한겨레> <21> 등에 후원하고 그 기사를 보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뜻입니다.

독자들의 관심사도 다양했습니다. 과거 <하니바람>(<한겨레> 주주·독자 매거진) 리포터로 활동한 적 있는 김정미씨는 15개월 딸을 키우면서 육아와 미세먼지 등에 더욱 관심 가지게 됐습니다. 조숙영씨는 <한겨레> 주주이자 <21> 창간독자로 딸 네 명이 모두 <21> 애독자입니다. 방문요양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조씨는 노인 문제를 기사로 다룰 때 조언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정분씨는 “기사를 쓸 때 갑과 을을 정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습니다. 교육 문제에서 교사는 갑, 학생은 을, 사업주는 갑, 노동자는 을로 모든 사건을 보니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기사를 쓸 때 “(집단으로) 싸잡아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대구 사람들이 모두 보수 세력은 아닌 것처럼, 집단 사이의 차이보다 집단 내부의 차이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민 함께하는 모임 너무 소중

이구태 독자는 “지역 독자모임을 한 달 간격이든 두 달 간격이든 정례화하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언제쯤 돌아올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21>은 지역 독자모임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21>은 언론 환경 변화로 전체 독자 수가 줄어들더라도, 우리가 노력한다면 오히려 지지대를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 후원제와 독자편집위원회, 지역 독자모임 등을 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길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리려 합니다. 대구 독자모임에서 류이근 편집장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후원제를 하면서 <21>이 얼마나 위기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지금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비유를 들어요. 저희가 죽기 직전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산소마스크 씌워주지 않으면 죽습니다’라고 할 때 도와주시면, 살긴 할 텐데 계속 입원해 있겠지요. 그것보다는 저희가 조금 건강할 때 ‘너희 좀 뛰어라’ 그러면서 운동비를 대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취재하고 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서요. 이런 모임이, 시민들을 얻는 과정이, 너무 크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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