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저녁 대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한겨레21> 독자모임.
후원 요구, 더 뻔뻔해져라 대구에서 독자모임까지 올 정도면 사실 <21>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층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조차 최근에는 <21>을 자주 못 읽는다고 합니다. 경북 성주에서 온 최용환씨는 “예전에는 <21>을 닳도록 봤는데, 요즘은 포장 비닐도 못 뜯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내가 일하는) 공장에 가져가면 주변에서 서로 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본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구태씨는 <21> 창간 때부터 구독해 한 번도 끊은 적이 없는 독자입니다. 대학생 딸과 함께 모임을 찾은 이씨는 “<21> 영업자들은 구독 요청을 할 때 <시사IN>에 비해 절박함이 덜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자들 의견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했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했습니다. <21>도 절박한 건 사실입니다. 두 달 전 시작한 후원제에 그 절박함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류이근 편집장은 이날 모임에서 “후원제를 시작한 뒤로 잠이 잘 안 올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매달 누군가 1만원이든 2만원이든 보내주는 후원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진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분들이 저희한테 걸었던 기대, 희망, 그런 것들이 어깨를 짓누를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이날 모임의 독자들은 “더 뻔뻔해져라”고 권했습니다. <한겨레>와 <21> 창간독자인 이종근씨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독자도 줄고 광고 수익도 줄어드는 환경이잖아요. 언론사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더 뻔뻔하게 후원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건 뻔뻔한 게 아니고, 기자와 독자가 힘을 합쳐서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후원제는 미래를 내다보고 가야 할 유일한 길이에요.” 사실 <21>은 지난 두 달간 기사를 통해 거의 매주 후원제를 알리고 있습니다. 충분히 절박하고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자들도 놀라게 합니다. 그건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시민 참여로 만들어진 <한겨레>의 역사성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참고로 <한겨레21>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드는 주간지입니다). 이종근씨는 “예전에 대구에서 <한겨레>가 지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독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독자 배가 운동도 하고, 새벽에 나와서 신문에 홍보지를 넣어 돌리기도 했다”며 “<한겨레>와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털어놨습니다. 갑·을 떠나 진실에 다가서길 <21>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의견을 보탰습니다. 김동은씨는 “언론사의 절박함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절박함도 중요하다”면서 독자와 후원자에게 ‘<21>이 아니면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해줄 매체가 없다’는 절박감이 들도록 더 애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씨는 “후원제로 간다면 <한겨레>에 애정을 가진 독자들을 실망시켰던 최근 몇몇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습니다. <한겨레> 독자들이 기자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잣대가 높기 때문에 실망시키지 않는 행보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쓴소리는 이어졌습니다. 정정분씨는 콘서트 표를 끊어놨는데 포기하고 이날 모임에 참석한 독자입니다. 그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21> 등 진보 언론에서 보수 언론과 같은 방식으로 진보 진영 정치인 등을 공격할 때 화가 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더욱 신중하게 보도해달라는 당부로 이해했습니다. 이대영씨는 다른 분들과 또 다른,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습니다. “지금 언론 시장은 기형적이라 마케팅이 더 중요해요. ‘좋은 기사, 후원 요청’만을 무기로 가져가기엔 부족할 수 있어요. 너무 깨끗한 것만 고집해선 살아남기 힘들어요. 일단 살아남아야 기사도 쓰죠. 진보 언론사들이 후원에만 의지하지 말고 진짜 살아남는 게 뭔지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독자들과 만나면 늘 느끼는 게 있습니다. 기자들과 소통에 목말라 있다는 겁니다. 별달리 준비한 프로그램도 없이 독자들과 만나서 어색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이날 모임은 저녁 6시30분에 시작해 밤 9시30분까지로 예정했는데, 한 시간을 넘겨 10시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천병렬씨는 <21> 기자들이 독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에 “권력이 시민 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보여서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21>이 딱히 권력은 아니지만, 언론이 시민들로부터 실시간 감시와 비판을 받고, 독자들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변한 시대상에 만족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천씨는 “거짓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 돈 받고 기사 쓰는 언론이 아니라, 팩트를 검증해주는 언론이 있어야 시민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문영씨는 “(좋은 언론에) 후원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광고 수익을 위해 재벌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보는 것보다, 제대로 된 언론사에 후원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길게 보면 비용은 결국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독자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자본에 예속되지 않은 <한겨레> <21> 등에 후원하고 그 기사를 보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뜻입니다. 독자들의 관심사도 다양했습니다. 과거 <하니바람>(<한겨레> 주주·독자 매거진) 리포터로 활동한 적 있는 김정미씨는 15개월 딸을 키우면서 육아와 미세먼지 등에 더욱 관심 가지게 됐습니다. 조숙영씨는 <한겨레> 주주이자 <21> 창간독자로 딸 네 명이 모두 <21> 애독자입니다. 방문요양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조씨는 노인 문제를 기사로 다룰 때 조언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정분씨는 “기사를 쓸 때 갑과 을을 정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습니다. 교육 문제에서 교사는 갑, 학생은 을, 사업주는 갑, 노동자는 을로 모든 사건을 보니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기사를 쓸 때 “(집단으로) 싸잡아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대구 사람들이 모두 보수 세력은 아닌 것처럼, 집단 사이의 차이보다 집단 내부의 차이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민 함께하는 모임 너무 소중 이구태 독자는 “지역 독자모임을 한 달 간격이든 두 달 간격이든 정례화하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언제쯤 돌아올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21>은 지역 독자모임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21>은 언론 환경 변화로 전체 독자 수가 줄어들더라도, 우리가 노력한다면 오히려 지지대를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 후원제와 독자편집위원회, 지역 독자모임 등을 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길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리려 합니다. 대구 독자모임에서 류이근 편집장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후원제를 하면서 <21>이 얼마나 위기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지금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비유를 들어요. 저희가 죽기 직전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산소마스크 씌워주지 않으면 죽습니다’라고 할 때 도와주시면, 살긴 할 텐데 계속 입원해 있겠지요. 그것보다는 저희가 조금 건강할 때 ‘너희 좀 뛰어라’ 그러면서 운동비를 대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취재하고 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서요. 이런 모임이, 시민들을 얻는 과정이, 너무 크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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