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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도의 ‘환상’을 좇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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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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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혼자 낯선 땅을 찾아 떠나는 배낭 여행은 궁극적으로 일종의 수행이다. 바깥을 통해 내면의 나를 수소문하는 길, 다시 말해 달 속에 감추인 달을 찾고 꽃 속에 숨은 꽃을 뒤지는 그런 여정. 그러나 사람들은 떠나는 와중에서도 자기 자신만 합리화시키고 상대방은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기에 결국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종종 범한다.

2001년 11월23일. 인도의 불교유적지 스라바스티에서 한국인 아가씨 목졸려 피살. 2002년 1월11일. 인도의 불교유적지 가야에서 20대의 한국인 남자 총격에 의해 사망. 97년 이래 인도에서 한국인 피살 사건은 이 사건들 외에 다섯번이나 더 있다. 한국인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배낭족 대부분은 인도여행을 자청해 지옥훈련 받는 것쯤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인도는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특수지역이다. 인도는 지구상에서 여행하기 가장 힘든 곳이다. 오죽하면 “인도를 졸업하면 세계여행을 졸업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들을 할까. 물론 직항도 있지만 인도로 가는 여러 길목 중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택하는 네팔에선 내가 머물던 1월중에도ㅅ밤새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들 사이에 총격적이 벌어졌고, 지금도 심각한 내전의 와중에 있다. 거기서 간신히 인도로 넘어가면 파키스탄과의 분쟁으로 온통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국 청년이 피살당한 가야란 지역을 우리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곳은 부처님과 관련된 특별성지인지라 자연히 불교 관련단체 관광객이 모이는 곳인데, 유독 한국인 단체가 묵는 여관에만 이른바 ‘비하르 마피아’라고 하는 떼강도가 사오십명씩 무장한 채 여관 전체를 포위해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여관에선 보복이 두려워 감히 신고조차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신고를 한다고 해도 인도경찰은 약속이나 한 듯 늘 늦다. 문제는 왜 한국인을 범죄대상 일순위로 삼느냐는 것이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최근 이례적으로 재빨리 체포된 스라바스티 살인범의 자백을 들어보자. “꼬리는 그 여자가 먼저 쳤다. 그러내 내가 정작 일(?)을 벌이려 하자 나를 한사코 거부했다. 서양 여자도 아닌 한국 여자가 나를 멸시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돈이나 챙기려고 죽였다.” 범인은 또 다른 살인전과가 있음이 밝혀졌고,직업은 대학생이었다. 심각한 내면의 문제가 갈등의 시작이다. 한국인은 인도인을 가난하다 업신여기고 인도인은 한국인을 서양인보다 한수 아래로 치부한다.

외국 배낭여행이란 그동안 삭막하던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을 더하는 것,보다 선명한 나 자신을 보자는 것이다. 기왕에 나서려면 매사에 보다 겸손하고 인내해야 한다. 가는 곳이 선진국이면 어떻고 후진국이면 어떤가.결론은 겸손과 인내다.그렇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자라면 그는 자신의 여행길이 지극히 외롭겠지만 아무도 몰래 저 사하라 사막에 눈보라를 일으킬 것이고, 저 히말라야 얼음 계곡에 진달래꽃 한송이 자기 이름으로 빨갛게 터뜨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미지의 땅 어디론가 혼자 떠나는 배낭족 여러분의 건투를 빌며….

현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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