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줄 치는 남자

이준건(26)씨는 충남 계룡시에서 군 복무 중이다. 5월 말 전역을 앞두고 “당분간 백수 예정”이다. 주로 기차역 편의점에서 <한겨레21>을 사서 본다는 그와 통화할 때, 저 너머 기차 소리가 들렸다. 안타깝게도 기차가 아닌 지하철 소리란다. 5월9일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는 그에게 오늘도 <21>을 사서 봤냐고 물었다. 이씨는 “오늘은 (아직) 안 샀습니다. ^^ 돌아가면서 살게요…”라는 답이 왔다. 준건씨는 형광펜으로 밑줄 쳐가면서 기사를 읽는다고 했다.

<21> 기사의 어떤 부분을 형광펜 줄 쳐가며 읽나. 기억하고 싶거나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주로 통계다. 살다보면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고 말할 때가 있다. 구체적 수치 없이 ‘다 그렇잖아’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21>은 통계 정리가 잘돼 있어 내 취약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최근에 밑줄 친 부분이 있나. 최저임금법 통권호 때 산정 방법 등 밑줄을 많이 쳤다. 수치는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1> 기사는 웬만하면 사보려고 하는데 잘 그러지 못했다.

다음 달부터 백수다. 전역 뒤 계획이 있나. 6개월 정도는 쉴 예정이다.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싶다. 모아둔 돈 까먹으면서 쉴 거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책도 써보려고 한다. 한겨레출판에서 내줄 수 있나.(웃음)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겠다. ‘나가서 뭐하지?’라는 고민이 가장 크다. 전공이 국어국문이라서 마땅히 할 게 없다.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문과잖나. 기자와 노무사, 교사 등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기자에도 관심 있나. 대학 때 교지 편집장이었다.

편집장을 인터뷰하다니 영광이다. 편집장으로서 보기에 내 취재는 괜찮나.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나.(웃음)

국문과면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가 와닿겠다. 그렇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좋아서 대학원에 갈 생각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대학원을 나와서는 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복무지가 계룡시인데 계룡산이 유명하지 않나. 공주에 동학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 벚꽃이 많이 핀다. 서울에서 여의도나 한강 벚꽃 구경을 간 적이 있는데 동학사 쪽 벚꽃이 이제껏 본 벚꽃 중에 가장 예뻤다.

‘동학사 벚꽃이 예쁘다’를 문학적으로 표현해달라. 제가 지금 군인이라서.(웃음)

준건씨는 얼굴 사진 대신 4월에 본 뮤지컬 티켓 사진을 보냈다. “‘육군 창작 뮤지컬이라, 군인으로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오바일까요? ㅎㅎ”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