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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애타는 ‘예타’

편집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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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2 00:41 수정 : 2019-02-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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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봉황역. 32명씩 태울 수 있는 무인 차량 두 대. 좌석 3분의 1 빈자리. 작은 관광열차 같은 느낌. 김해시청역 승강장 벽에 붙은 전단지. 메가마트 김해점에서 2만원어치 이상 구매 고객 경전철 무료 이용권.”

2016년 9월12일 취재수첩 메모다. 말 많던 부산~김해 경전철을 그날 처음 타봤다. 그해 하루 평균 탑승객은 3만4천 명이었다.

지난 1월29일 정부가 남부내륙철도, 새만금 국제공항 등 24조1천억원 규모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문득 부산~김해 경전철이 떠올랐다. 6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루 탑승객이 5만 명을 넘긴 했으나, 애초 사업 추진 때 예측한 18만8천여 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돼지저금통을 나눠주거나 워터파크 입장권을 주는 등 승객을 끌려는 이벤트는 매달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부산~김해 경전철은 예타를 통과한 사업이었다. 예타는 도로, 철도, 다리 등 이른바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할 때 미래 이용객 따위를 추산해 경제성 등을 따지는 행위다. 사업성이 없는데도 너도나도 정치적 이유로 돈을 마구 퍼붓지 못하도록 하는 브레이크다. 정부가 발표한 예타 면제 사업은 누구도 시비 붙기 어려운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란 명분이 씌워져 있다. 실제 전국 16개 광역권에 사업이 골고루 분포돼 있다. 이 포장의 방식, 내용, 논쟁을 둘러싼 네 가지 거짓과 모순이 있다.

황금률이 된 예타. 이번에 발표한 23개 사업 가운데 이미 예타에서 탈락한 7개 문제가 부각됐다. 예타를 통과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현실에서는 예타를 거쳤더라도 엉터리 수요예측으로 경제성이 과대평가돼 골칫거리가 된 사업이 즐비하다. 부산~김해 경전철은 그중 하나다. 예타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이마저 앞다퉈 무시하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모는 꼴이다.

도깨비방망이가 된 국가균형발전. 균형발전은 까놓고 말하면 지역 배려란 정치적 결정의 다른 표현이다.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표밭 관리 성격이 짙다. 그렇게 잉태된 게 이명박 정부 때는 광역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였다. 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와 규모가 엇비슷하다. 앞으로 어느 정부에서나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할 때 균형발전을 요술램프로 쓸 수 있다. 그때 무엇으로 막겠는가.

지역경제 발전의 대명사가 된 SOC. 길게 봤을 때 발전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덫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부산~김해 경전철도 오랜 논란 끝에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추진됐지만 결국 김해시 곳간을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6년 전 김해시는 경전철 손실을 메우려 연간 68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고 있었다. 다리나 철도, 도로를 놓으면 끝이 아니다. 운영할 때 수익이 나지 않으면 세금으로 때워야 한다. 그만큼 경제와 복지 사업 등에 쓸 돈이 준다.

이중 잣대로 전락한 예타 면제. 현 집권 세력은 예타 없이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30대 선도 프로젝트를 불도저식 토건 정책으로 비판했다. 그때의 기억은 없고 지금은 지역균형발전이란 선의만이 강조된다. 10년 전 집권 세력이었던 지금 제1야당은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가 ‘혈세 낭비’라면서 핏대를 세운다. 각자의 정치적 위치가 달라지면서 입장도 180도 바뀌었다. ‘그때그때 달라요’식 상황론으로 모든 걸 합리화하면 그만일까.


“당장 1년, 1~2년의 경기부양을 두고 이 작업이 추진됐다기보다는 10여 년의 안목을 보고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1월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하면서 했던 말인데, 속내는 그의 말을 뒤집으면 될 것 같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는 대놓고 말할 수 없겠지만 부진한 경기를 띄우려는 고육책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의 말과 달리 10년 뒤를 내다보면 제2, 제3, 제4의 부산~김해 경전철이 어른거린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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