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통계는 경제를 지킵니다."

400
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이주의 독자ㅣ한국은행 정정호 경제통계국장

사진/ (이용호 기자)
그는 한국은행 사람 중 전철환 총재 다음으로 바깥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애초부터 유명인사여서가 아니라 맡고 있는 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대개 한국은행을 돈 찍어내는 곳으로 여기지만 사실 한국은행이 언론을 타는 건 주로 경제통계를 발표할 때다. 한국은행 정정호(54) 경제통계국장이 이름을 ‘얻은’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3년간 최장수 경제통계국장으로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3년 전 경제통계국장을 새로 맡던 즈음 그의 일상에 또다른 작은 변화가 있었다. 주변 사람의 권유로 <한겨레21>을 집에서 받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는 그이지만 <한겨레21>은 각별한 대상인 것일까. 지난 2월 표지이야기 ‘부자의 꿈’ 취재차 그를 찾아갔던 나는 점심시간이 다 된 탓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정 국장한테서 직접 전화가 왔다. 전화 저편에서 그는 “내가 도와줄 일이 뭐냐. <한겨레21>에서 왔는데 그냥 보내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한장짜리 문서가 그로부터 이메일로 날아왔다. 각종 통계를 분석하고 재구성해서 추정한 ‘한국 부자의 조건’이었다. 많은 품을 들인 훌륭한 문건이기도 했지만 퍼뜩 떠오른 건 ‘이주의 독자’ 코너에 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주일 뒤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는 “조정래의 <한강>을 최근 다 읽었다”고 불쑥 말을 꺼냈다. <한강>이라니? 의문은 금방 풀렸다. 정기구독 3년차 독자로서 그는 나름대로 <한겨레21>의 캐릭터를 ‘마이너리티’로 정리하고 있었다. “<한강>의 등장인물을 보면 <한겨레21>하고 비슷해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이 주로 등장하잖아요.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마이너리티 기사가 다른 잡지에 비해 돋보인다고 할까? 최근의 ‘장모시대’, ‘너 자격있니?’ 같은 기사도 좋았어요.”

국제수지, 통화, 물가, 기업경영분석…. 한국경제의 흐름을 정확한 지표로 보여주는 통계는 죄다 그의 손에서 전결이 이뤄진다. 한국경제의 오늘을 수치로 한눈에 꿰면서 동시에 현실을 진단하는 자리가 경제통계국장인 셈이다. “통계가 오염되어 신뢰가 무너지면 그 통계를 기초로 짜는 정책도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죠. 또 통계 조사시점이 경제가 막 치고올라가는 국면인지 아니면 확 꺾이는 국면인지에 따라 결과가 출렁거리게 되는데 이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기업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를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통계가 신뢰를 잃으면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충실한 통계자료를 얻기 위해 그는 통계 조사대상자한테 나눠줄 기념품도 늘 고민한다. “통계는 기업과 가계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통계조사에 적극 응해달라고 기념품을 하나씩 돌리고 있죠. 그동안 시계에서 우산으로, 다시 전화카드로 기념품을 바꿨는데 휴대폰 보급으로 전화카드가 시들해졌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1천원짜리 두장을 나란히 잇대 한장으로 찍어낸 ‘1천원짜리 연결화폐’를 새 기념품으로 만들었는데 요즘 빅히트라고 한다. “전문가집단은 자기가 일하는 분야 외의 다른 세계는 잘 모릅니다. 내게 <한겨레21>은 그 부분을 채워주는 매체라고 할 수 있어요.”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