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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생명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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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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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양 님에게.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기사를 읽고 한동안 가슴이 아득해졌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스스로에 대한 비겁과 침묵에 대한 상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저 또한 군 입대 문제를 놓고 스스로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마치 선승의 화두처럼 맴돌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생명과 전쟁, 그리고 평화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그리 큰 깊이는 없는 젊음이었지만 그래도 이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한 생명으로서 나와 다른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에 대해서 공존과 화해로 살고자 했던 제 생각이 그 입대라는 현실과 극단에 맞서는 시기였지요. 나의 신념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잠시 숙이고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를 되물으며 한동안 내면에 들어가 물음을 던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제 마음을 내내 부여잡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선택한 것은 입대였고 전 주어진 그 기간을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물론 분단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가 겪어야 할 운명이기에 즐거운 보람도 있었고 깊은 내면의 상처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던 것은 이념이든 사상이든 이해관계든 결국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일을 몸 안과 몸 밖에서 벌여야 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을 사회 혹은 국가가 용인하고 묵인해준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훈련을 함께했던 ‘전우’들은 소년소녀가장을 다룬 <일곱개의 숟가락>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서로 가슴이 아파 펑펑 울던 여린 영혼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영혼들에게 전쟁이나 ‘적’들에 대한 분노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을까요. 또한 스스로 그러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무의식의 상처를 입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님의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보고 그 선택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내면의 성찰 그리고 짙은 아픔이 담겨 있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자든 가난한 자든 힘이 있는 자든 없는 자든 당연히 우리의 삶이 담고 있어야 할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깨우는 생명의 목소리가 따스한 햇살처럼 스며 있음을 공감했습니다.

님은 생각이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비난도 받고 분단을 즐기는 남북의 힘있는 사람들이 던지는 법과 제도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님의 선택이 50여년의 분단을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품위있고 존엄하며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양심과 신념의 자유가 단지 헌법조항에만 나열되어 있는 죽어 있는 문구가 아니라 마치 초원에서 질주하는 동물들처럼 생생하고 활력있으며,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강력한 권리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내면의 평화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양대웅/ 한국청년연합회 평화통일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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