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는’ 손바닥문학상이 올해로 아홉 해를 맞았다. 올해는 지난해 300여 편보다 적은 총 232편이 응모됐다. 그중 <한겨레21> 기자들이 예심을 해 23편을 본심에 올렸다.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권성우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가 본심 심사에서 대상작으로 ‘경주에서 1년’, 가작으로 ‘가위바위보’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를 선정했다. 심사 대표집필을 맡은 이명원 평론가가 제9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작과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의 심사평을 보내왔다._편집자
12월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왼쪽부터) 이명원 문학평론가, 권성우 문학평론가, 최재봉 기자가 손바닥문학상 본심 심사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그렇다고는 하지만, 손바닥문학상은 가령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상 제도와 같이 기술적으로 숙련된 작품을 뽑는 제도는 아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체험해왔던 현실에 대한 진솔한 공감 능력과 비판 의식, 삶에 대한 진실 추구 같은 범속한 소재에서 비범한 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주로 논의한 작품은 ‘화마’ ‘시간을 접으며’ ‘옛날 통닭’ ‘밤의 목소리’ ‘푼타아레나스행 택배’ ‘가위바위보’ ‘경주에서 1년’ 등 7편이었다. 피로한 현실에서의 탈출과 극복 ‘화마’는 안정적인 문장을 가졌다. 그러나 모녀의 신산스러운 인생유전이라는 모티프와 개의 죽음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을 접으며’는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시인인 남편이 희생됐다는 설정인데, 그러다보니 죽음조차 낭만적으로 채색되는 단점이 있었다. ‘옛날 통닭’은 무상급식과 태극기집회 사이에서 생활고를 견뎌나가는 노인의 삶을 골계적으로 서술해 서사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밤의 목소리’는 2인칭 ‘너’의 서술이 인상적인데, 정규직이 되려고 사장과 성관계를 했지만 해고 통보와 함께 자살해버렸다는 인턴 여성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앞에서 언급한 작품 5편 외에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작품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와 ‘가위바위보’ ‘경주에서 1년’이다.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는 잠에서 깨자 소파가 되어버린 한 택배 분류 노동자의 몽상을 담고 있다. 카프카식 ‘변신’ 모티프의 패러디인데, 푼타아레나스로 상징되는 이역의 낯선 도시는 피로한 현실에 대한 탈출과 극복의 표상으로 제시된다. 문체나 서사구조 역시 안정적이다. ‘가위바위보’는 소설로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재취업 뒤 워킹맘이 되어 겪는 가족과 직장, 양방향에서의 불안감을 담고 있다. 그것이 몸의 생리적 이상 징후라는 장치로 나타나면서 서사의 핍진성을 높인다. ‘경주에서 1년’은 본심에 유일하게 남은 논픽션 작품이다. 일종의 병상 수기에 해당하는 산문인데, 말기암 환자의 글이라고 보기에 요양원에 있는 환우들에 대한 서술과 묘사,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자못 생동감 있고 사색적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많은 소설 작품의 작중 인물들이 자살과 뜻하지 않은 죽음이라는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되는 것과 반대로, 이 작품의 서술자는 설사 한계상황일지라도 살아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담담한 성찰적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논픽션 위한 ‘발바닥문학상’을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조차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을까. 폐색되어 소진되어가던 우리 생의 에너지는… 다시 흐를 수 있을까.”(‘경주에서 1년’ 중에서)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어떤 한계상황에서도 사랑과 생의 에너지가 다시 흘러야 하고, 흐를 수 있음을 이 작품이 증거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가위바위보’와 ‘푼타아레나스행 택배’는 가작으로 선정했다. 모두에게 축하드린다. 마지막으로 좀 엉뚱하지만, 종래의 손바닥문학상으로 픽션·논픽션 모두를 공모하기보다 ‘발바닥문학상’의 신설을 제안해본다. 손바닥문학상은 픽션, 발바닥문학상은 논픽션으로 장르를 이분화하면 어떨까. ‘한겨레21 문학상’이라는 제목으로 손바닥문학상 부문, 발바닥문학상 부문으로 나눠 공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좋은 논픽션도 문학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본심 심사위원: 최재봉, 권성우,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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