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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쿨한’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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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0 14:33 수정 : 2017-11-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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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직함보다 ‘시장’이라는 직함으로 더 익숙합니다. 제가 2~3년차 초년 기자일 때 서울시를 출입하며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전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 전 대통령을 ‘불통’의 상징이라 하지만, 당시 서울시 직원들의 얘긴 달랐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소통하기 편한, ‘쿨한’ 상사라는 것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세상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른 뒤 내 편이 아닌 이들의 지적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유형의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내 편’인 시 직원들의 건의엔 귀를 기울이지만 ‘네 편’인 시민단체나 <한겨레> 같은 비판 언론의 지적엔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귀를 닫곤 했습니다. 귀를 닫았다는 말은,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2003년 서울시 송년회 때 일입니다. 서울시청 근처 한 호프집에서 100명 넘는 서울시 기자단과 서울시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무렵 이명박 서울시장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이 시장의 양대 역점 사업인 청계천 복원 공사가 막 시작됐고, 서울의 재개발단지를 파헤치던 뉴타운 사업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착착 진행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를 깨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기자 하나가 이 시장에게 쓴소리를 내뱉습니다. 당시 이 시장은 “윤덕홍 (당시) 교육부총리는 시골 출신으로 진정한 서울의 교육을 모른다”는 말로 설화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면 지방 사람들이 상처받는다”고 지적하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한겨레, 사람들이 만 명이나 보는가?”

최근 가장 핫한 화제의 인물은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김양진 기자가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검찰은 이미 김관진 전 국방장관에게서 “이 전 대통령에게 사이버사령부 활동 내용과 인력 증원 등에 대해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그 밖에 2007년 ‘BBK 주가조작 의혹’,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입니다. 이제 이 전 대통령의 연내 검찰 소환을 예측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신을 옥죄어오는 상황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정치 보복”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발언을 들은 대다수 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을 떠올리며 이 전 대통령의 파렴치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을까요?

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2004년 4월28일 밤 11시께 서울 중구 청계천4가의 한 공구상가 안에서 당시 쉰두 살이던 한 남자가 가게 천장에 목을 매 숨졌습니다. 그가 남긴 A4 한 장짜리 유서에는 ‘서울특별시 시장님 천개천(청계천이 아닙니다) 상인을 도우소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청계천에서 29년째 장사를 해온 이 남자는 개천 복원 공사로 가게 주변 교통이 불편해지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이 남자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가게에서 밤을 새운 뒤 다음날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을 다룬 이 전 대통령의 저서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2005) 등을 아무리 뒤져봐도 자화자찬만이 담겨 있을 뿐 이 남자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에는 지식, 용기, 결단력, 포용력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 능력’입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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