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등록 : 2017-11-13 14:37 수정 : 2017-11-13 14:51
지난주 출근길 만원 지하철역에서 무료함을 견디다 시 한 편을 읽었습니다. 시는 제가 좋아하는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적혀 있었습니다.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이는 심보선입니다.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시인이 소환해낸 인물은 2016년 5월28일 오후 5시55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난 안전문을 수리하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진 19살 김아무개군입니다.
사회부 기자일 때 사건·사고 현장에 나가면 별 대단치 않은 ‘디테일’에 집착하곤 했습니다. 2005년 11월 집에서 키우던 개에 물려 죽은 영인(숨질 때 9살)이의 사연을 취재할 땐 아이가 살던 비닐하우스집을 탈탈 턴 뒤 병원까지 찾아가 개의 몸길이가 130cm였다는 사실을 기사에 꾸겨넣었습니다. 2006년 5월4일 경기도 평택에서 군과 경찰이 대추초등학교 건물을 부술 땐 초등학교 운동장을 점거한 전경의 점심 도시락 반찬이 ‘고추장·김치·시금치·풋고추·미역국·잡채·새우맛살튀김·방울토마토 두 알’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더 좋은 기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김군이 숨졌을 때 전 일본 도쿄에 있었습니다. 시를 읽고 문득 갈색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컵라면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 나왔던 여러 기사를 뒤져 문제의 컵라면은 농심의 ‘육개장 사발면’(중량 86g)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 모두가 함께 슬퍼했던 이 죽음에 대해 이제 와 달리 보탤 말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한국 사회는 또 다른 충격적인 죽음을 보았습니다.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법원의 실질영장심사를 앞두고 있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11월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죽음을 둘러싸고 검찰 안팎에서 여러 말이 오가는 모양입니다. 숨진 변 검사는 검찰 내에서 신망이 높은 실력 있는 검사였고, 자녀 중에 ‘고3 수험생’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동료의 죽음에 검찰 내부가 부글부글 끓자, 조금씩 적폐 수사의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검찰의 적폐 수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두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각각 어떻게 기억될까요. 변 검사의 죽음에 대해 검찰 내부에선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원장이 시켜서, 조직이 시켜서 한 일인데, 무슨 비리처럼 취급했다”는 항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검찰이 아니라, 이견이 있으면 선배들을 자유롭게 치받을 수 있는 한겨레라는 특이한 조직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그래서 조직의 명령이라면 부당하고 위법한 일이라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뿐입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린 김군의 죽음을 오랫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 검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의 평가란 가혹하고 냉정한 것입니다. 변 검사는 억울한 심정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겠지만, 그래서 정말 억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