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착안한 [USA투데이]는 1982년 창간 이후 ‘지지 사설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no-endorsement policy)을 지켜왔다. 공정보도 명분을 내걸긴 했지만, 지지 사설의 전통을 이끌어온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기존 유력지와 차별화를 노린 상업적 계산도 있다. 34년 동안 지속된 그 원칙을 파기한 것은, 그래서 특별했다. 대선을 40여 일 앞둔 2016년 9월29일, [USA투데이]는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부적절하다’(Trump is unfit for the presidency)는 제목으로 약 8천 자 분량의 사설을 썼다. 한국 신문으로 치면, 한 면 전체를 털어 트럼프를 반대한 셈이다. 그 도입은 대략 이렇다. “우리는 지난 34년 동안 대선에서 어느 편을 든 적이 없다.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은 표명했지만, 누가 대통령으로 적합할지 독자에게 제시한 적은 없다. 이 원칙을 4년마다 재검토했지만, 이를 변화시킬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이제 우리의 전통을 깬다.” 이어지는 글에서 이들은 ‘변덕스럽고, 편견으로 가득하고, 불투명한 이력을 갖고 있고, 국가적 담론을 어지럽히는 심각한 거짓말쟁이’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8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적었다. 지지 사설의 이면에는 ‘엘리트주의’가 있다. 언론이 독자의 선택을 한발 앞서 촉구하면서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덕적 프로페셔널리즘’도 내장돼 있다. 대선 후보를 직접 취재하고 검증한 언론인들이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공개하는 것이 (효용이 있건 없건) 독자에 대한 의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대선 특집판 연속 발행을 궁리하던 2월 초, <한겨레21>은 ‘특정 후보 공개 지지’ 여부를 두고 토론했다. 기자들의 상당수는 주저했다. 어느 기자는 이렇게도 말했다.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후보 지지가) 화제가 되긴 하겠지만, 매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야죠. 우리는 공정하게 보도했더라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절차적·법률적 어려움도 있다. 미국 거대 언론사와 달리 <한겨레21>은 논설위원실과 뉴스룸이 분리돼 있지 않다. 기자와 편집장은 취재보도를 책임지는 동시에 각종 칼럼도 직접 집필하거나 관리한다. ‘사실과 의견의 물리적 분리’가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현행법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언론사 차원에서, 또는 매체를 대표하는 언론인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써도 되느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당혹스러워했다. 기자가 개인 신분으로 주변 사람에게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공개적 기사나 칼럼을 통해 특정 후보의 지지·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건 선거법상 공정보도 의무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그런 전례가 없어, 명확한 판단은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다. 미국에서 [USA투데이]는 상업주의 매체로 통한다. 의도적으로 ‘기계적 중립성’을 강조해왔다. 그런 매체가 오랜 내부 원칙을 파기하면서까지 트럼프를 반대한 것은 ‘특별하고 역사적이며 결정적인 선거’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2017년 5월9일, 한국의 대선은 다른가. 이번 대선은 미국의 2016년 대선만큼 특별하지 않은가. 관성과 전통의 경계를 시험해서라도 ‘프로페셔널리즘의 도덕성’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마침내 도래한 것은 아닐까. [USA투데이]의 반대 사설 마지막은 대략 이렇다. “유권자를 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충고는 이것이다. 당신의 판결에 충실하라. 그러나 당신이 무엇을 하건, 위험한 선동에 대한 경고음에 저항하라. 어떤 경우건 투표하라. 다만 도널드 트럼프를 찍지는 말라.” 이 정도의 ‘반대 사설’도 불가능하다면, 언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5월9일 대선 전, <한겨레21> 독자에게 우리의 판단, 적어도 편집장인 나의 판단을 전하고 싶다. 현행 법률이 규정한 ‘공정보도’의 경계를 직접 시험할 계기도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과 제안을 기다린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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