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정직한 편지들
새해 기획 독자편지를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편지들을 이렇게 잘 쓰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읽다가 목이 메어서 코까지 풀었습니다. 가장 정직하고 소탈하게 편지들을 쓰셔서 읽는 사람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특히 철도청에 근무하는 젊은 엄마와 취업 준비생들과 이제는 여읜 아버지를 생각하는 몸도 마음도 커진 자식들의 편지글이 가슴에 닿았구요, 황석영 선생님이나 북의 동포에 대한 글도 좋았구요, 대구 청년의 패기넘치는 국민을 생각하는 글은 얼마나 유쾌했는지 모릅니다. 이 기획기사 정말 좋습니다.
김미혜
경제기사가 부족해요 <한겨레21>을 구독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조목조목 파헤쳐 역시 <한겨레21>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제면의 심층취재가 다른 지면에 비해 적다는 것입니다. 취근 아르헨티나 상황이 보여주는 교훈, 헤지펀드 귀재들로부터 한국은 여전히 안전한 지역인지, 주가끌어올리기의 국민적 과제는 무엇인지, 금강산관광이 다분히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져선 될 문제인지 등 한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신중히 생각해볼 만한 다각적 경제기사가 절실히 느껴지는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한겨레21> 기자님들의 깊은 혜안을 기대하며 경제적으로 한국이 웅비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윤정섭 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구요? 이번호 문화면 ‘비평의 파산?’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기보다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영화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일반 관객이 정확히 그 성향을 파악했다는 거죠. 평론가들이 좋다고 말하는 영화를 무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의(아마도 수준높은) 관점에서는 훌륭할 거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나는 <조폭 마누라>를 보고 싶다”라는 거죠. 진정으로 영화평론가들의 말을 믿지 않는 세상이라면 별 몇개 달면 오히려 영화가 안 된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죠. 음악에서 정규교육이나 대학교육에는 클래식이 주류로 되어 있어도 그건 그거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가는 것과 같은 방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어른들, 나이 좀 들고 사회적으로 높아지면 그 다음부터 오페라 보잖아요. 사실은 뽕짝 좋아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인정하면서 기질적으로는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는 말은 맞기보다 틀린 쪽이 더 맞는 거 같습니다. 박동현 언론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나 이외의 사람들의 일에는 무관심하기 일쑤입니다. 있는 자와 아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일함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은 생계의 위협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것이 바로 언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곳곳의 약자들의 모습을 모두에게 진실되게 알리고 함께 해결점을 찾는 일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한겨레21>은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국민주주와 함께하니 겁낼 것이 없으며, 겁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한탕주의식 언론의 일회성 기사가 아닌 지속적인 기사로 국민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알리고 참여를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국민주주가 바른말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듯이, <한겨레21>이 국민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에 든든한 힘을 실어주기 바랍니다. 언론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또, 한 나라의 교육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 모든 교육의 마지막 도달점이 돼버린 수능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올해 수능은 그 여파가 굉장했는데 그에 대한 기사가 너무 적은 분량에 잠시 거론된 점이 아쉽습니다. 언론들의 무관심과 자신들의 잣대에만 끼워맞추는 태도가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육 죽이기의 주범이 아닐까요? 손지은/ 충북 영동군 영동읍 독자만화
경제기사가 부족해요 <한겨레21>을 구독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조목조목 파헤쳐 역시 <한겨레21>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제면의 심층취재가 다른 지면에 비해 적다는 것입니다. 취근 아르헨티나 상황이 보여주는 교훈, 헤지펀드 귀재들로부터 한국은 여전히 안전한 지역인지, 주가끌어올리기의 국민적 과제는 무엇인지, 금강산관광이 다분히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져선 될 문제인지 등 한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신중히 생각해볼 만한 다각적 경제기사가 절실히 느껴지는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한겨레21> 기자님들의 깊은 혜안을 기대하며 경제적으로 한국이 웅비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윤정섭 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구요? 이번호 문화면 ‘비평의 파산?’을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기보다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영화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일반 관객이 정확히 그 성향을 파악했다는 거죠. 평론가들이 좋다고 말하는 영화를 무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의(아마도 수준높은) 관점에서는 훌륭할 거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나는 <조폭 마누라>를 보고 싶다”라는 거죠. 진정으로 영화평론가들의 말을 믿지 않는 세상이라면 별 몇개 달면 오히려 영화가 안 된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죠. 음악에서 정규교육이나 대학교육에는 클래식이 주류로 되어 있어도 그건 그거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가는 것과 같은 방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어른들, 나이 좀 들고 사회적으로 높아지면 그 다음부터 오페라 보잖아요. 사실은 뽕짝 좋아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인정하면서 기질적으로는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비평이 영향력을 잃었다는 말은 맞기보다 틀린 쪽이 더 맞는 거 같습니다. 박동현 언론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나 이외의 사람들의 일에는 무관심하기 일쑤입니다. 있는 자와 아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일함 속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은 생계의 위협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것이 바로 언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곳곳의 약자들의 모습을 모두에게 진실되게 알리고 함께 해결점을 찾는 일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한겨레21>은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국민주주와 함께하니 겁낼 것이 없으며, 겁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한탕주의식 언론의 일회성 기사가 아닌 지속적인 기사로 국민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알리고 참여를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국민주주가 바른말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듯이, <한겨레21>이 국민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에 든든한 힘을 실어주기 바랍니다. 언론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또, 한 나라의 교육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 모든 교육의 마지막 도달점이 돼버린 수능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올해 수능은 그 여파가 굉장했는데 그에 대한 기사가 너무 적은 분량에 잠시 거론된 점이 아쉽습니다. 언론들의 무관심과 자신들의 잣대에만 끼워맞추는 태도가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육 죽이기의 주범이 아닐까요? 손지은/ 충북 영동군 영동읍 독자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