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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는 ‘늙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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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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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대학생 진정회씨

사진/ (박승화 기자)
그는 참 부산스런 사람이다. 이주의 독자들이야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할 만큼 열심히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사회활동에 여념이 없는 젊은이는 정말 드물다.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 1학년 진정회씨. 지역감정 타파와 통일운동에 투신하고 싶다는 이 스무살 젊은이는 “아무래도 난 또래에 비해 늙은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그는 벌써부터 학점관리에 골몰하는 또래 대학생들보다 ‘젊은’ 걸까 늙은 걸까.

“이름이 독특하네요.” “성품이 곧으면 사람이 모인다는 뜻이래요.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어요.” 이럴 땐 “이름값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가 <한겨레21>을 접하게 된 것은 고3 시절로 거슬로올라간다. 당시 한겨레신문사 주주였던 국어선생님의 강력추천도 있었고 수업교재로 딱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보게 됐단다. 한번 읽어보고 열혈독자가 된 그는 대학생이 돼서 과외 아르바이트로 첫 월급을 받자마자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초기에는 정치면은 거들떠보지 않고 문화면과 시사SF만 탐독하던 진씨는 2000년 16대 총선 관련 기사 중 “노무현은 바보… 바보!”라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이른바 ‘전라도당’ 후보로 나선다면 떨어질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고 한다. 그 길로 진씨는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PC방에 가서 그의 홈페이지를 뒤져봤다. 그는 지금 노무현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젊은 벗’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통일운동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수강한 한상진 교수의 통일강좌에서 그는 세계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가 다시 본 대한민국은 ‘섬’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휴전선으로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가고 싶은 나라는 독일인데요, 왜 항상 비행기를 타고 갈 생각만 했지 육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 마치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역사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통일문제를 고민하고, 졸업한 뒤에는 독일로 유학을 갔다온 뒤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단다.

대학 신입생의 1년은 평생을 지배한다. 01학번인 진씨의 1년 중 가장 기억남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딱 네 가지죠”라고 잘라 말한다. 첫째, 노동절 집회 때 동아리 선배와 거리로 나섰을 때 택시 기사 한명이 동료의 멱살을 잡으며 “집회시간을 지키라”고 고함질렀을 때의 막막함. 둘째, 농활 중에 마을의 여중생들과 대화하면서 느꼈던 도시와 농촌의 엄청난 거리감. 셋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광주 출신 회원 한명과 함께 부산에서 유인물을 나눠줄 때 “지역감정, 그런 게 어딨어”라며 사과를 건네주시던 할아버지. 넷째, 부산에서 광주로 자전거 여행을 하며 망월동 묘역에 새로 안장된 사람의 묘를 지켜볼 때의 쓰라림. 그의 1년은 참 부산스러웠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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