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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계속 거품 물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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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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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배우 오지혜씨

사진/ (고경태 기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 자막이 사라지고도 관객이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면, 그건 아마 마지막 노래의 끈적끈적하고 긴 여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사랑밖에 난 몰라>의 주인공을 두명으로 기억할 것이다. 심수봉, 그리고 오지혜(34). ‘가수 아닌 배우’ 오지혜가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쏟은 그 절창은 오리지널을 위협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 그가 <한겨레21>의 열광독자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가계사정으로 인해 <씨네21>을 끊고 <한겨레21>만을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가 <한겨레21>과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할 때, 기자는 마치 영화 속의 그 노래를 듣는 듯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과찬의 요지는 이랬다. “한번 특집을 하면 정말 통쾌하게 특집을 하더라… ‘대충 이 정도면 됐어’하고 느슨해질 때 ‘아차 이런 게 있었지’ 정신차리게 해주더라… 그냥 이대로 쭈-욱 나가라.”

<와이키키…> 촬영때 몸 속에 있던 아이는 벌써 세상에 나와 6개월째다. 요즘 그 딸 이오수린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한손으로는 우유를 먹이면서 또 한손으로는 <한겨레21>을 넘기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한단다. 그리고 첫장부터 끝에 있는 ‘이주의 독자’까지 남김없이 읽어버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잠시 연기를 가르친 제자 중에 베트남 참전군인의 자녀가 있었다. 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동생은 장애를 앓는 형편이었다. 오지혜씨는 베트남전에 관한 특집기사가 실린 <한겨레21>을 여러 권 묶어 보내면서 편지를 동봉했다. “개인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국가가 지은 죄도 냉정하게 큰 틀에서 봐야 하지 않겠느냐.”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쓰면서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려줬다는 그는, 적은 액수지만 성금모금에도 참여했다.


얼마 전엔 영화인 남편 이영은(31)씨와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태양씨’에 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오씨는 긍정적으로 보는 데 반해 남편은 “좀 웃긴다”는 쪽이다. “누군 총 들고 싶어 드느냐, 소년 취향 아니냐고 해요. 그 얘기 하느라 밤을 새울 뻔했어요.”

오씨는 10년간 1인극 <여자의 아침>을 포함한 8편의 연극과 <창><8월의 크리스마스> 등 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중견배우로서 그는 가끔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정치와 사랑을 떠나서는 예술을 논할 수 없다. 배우로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왜 배우가 돼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자.” 그러면서 권장도서를 추천하는데, <한겨레21>이 빠질 때가 없다. “어떤 선배는 논조가 너무 편파적이라 구독을 끊었다는데 전 달라요. 한쪽으로 용감하게 거품 무는 매체가 있어야 세상이 변하지 않겠어요?” 오지혜씨의 주문을 따르자면 우리는 계속 거품을 물어야 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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