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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꿈을 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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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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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광명시립도서관 사서 음옥분씨

우산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센 비가 내리던 날에도 시립도서관은 북적거렸다. 도서관은 언제나 꿈을 꾸는 곳이다. 공부보다 휴게실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을 즐기는 철없는 중학생들부터 짐짓 고독하게 담배를 피우는 나이든 고시생까지, 이 낡은 도서관에서 미래를 꿈꾼다. 1층 자료열람실에서 자료정리에 여념이 없는 음옥분(44)씨는 이들에게 꿈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그 때문일까. 그를 처음 봤을 때 ‘불혹을 넘긴 아줌마도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그 나이에 이미 ‘문학소녀’의 치기를 벗어나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싶어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험한 세파에 힘들게 적응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무역업체에서 몇년을 근무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13년 동안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외동딸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이제 다 키웠군”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그는 이 일에 뛰어들었다. 1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이 쉬울 리 없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소설가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좋은 소설을 대출해 주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처음 한 일이 정기간행물 정리. 그와 <한겨레21>의 만남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다른 잡지들보다 솔직한 점이 맘에 들었어요. 기사에 꾸밈에 없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리고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렵지 않고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았어요.” 책을 받으면 그가 제일 처음 읽는 것이 ‘표지이야기’이다. 사회의 아픈 곳을 꼬집는 기획력에 항상 감탄한다고 한다. ‘쾌도난담’도 즐겨읽는 난이다. 김규항, 김어준씨가 게스트에게 던지는 솔직하고 노골적인 질문이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경제&경제인’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도서관에 근무하다보니 <한겨레21>을 많이 읽는 독자층이 누구인가를 살필 수 있는데, 주로 주부들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즘 주부들은 특히 경제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잡지의 경제난은 이런 주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직장 남성들이 관심 가질 내용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좀더 주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생활경제 기사들을 많이 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보람이다. 그러나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많다. “저흰 적은 인력으로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도서 이용의 기본규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분들이 많아요.” 현재 아동열람실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젊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도서관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충분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떠들어 주의를 주면 바로 민원이 들어와 허탈한 적이 많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 한다. 도서관에서 그를 찾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갈수록, 그의 행복도 커져간다.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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