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이번 주부터 <주간 고공21>을 재창간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한 주 동안의 소식을 전해드릴 예정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그날그날 고공농성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고공21記’라는 이름으로 전하려 합니다. ‘고공21記’는 <주간 고공21>의 편집을 맡고 있는 이문영 기자가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공유 부탁드립니다.
고공21記를 시작하며
기자는 글을 써서 행동하는 종족이다. 기자인데 쓴다는 행위가 늘 버거웠다. 머리가 느리고, 마음이 느리고, 언어도 느리다.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할 때마다 문장이 채워지지 않아 부족한 시간만 탓했다. 기자의 글은 정확하되 신속하게 노출되고 읽혀야 사회를 충격하고 변화를 격발한다. 나는 그 속도를 쉬이 감당하지 못했다.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단 하나의 흔적도 생산하지 못했다. 종이 매체의 속도도 따르지 못하는 나의 머리와 마음과 언어는 SNS의 속도를 익히지 못했다. 내 것이 되지 못할 속도지만 꾸역꾸역 좇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페북을 통해서라도 전해야 할 긴급한 이야기가 생겼다. 이 글은 나의 첫 페북 활자다.
<한겨레21>은 지난해 잡지 내 주간지 형식으로 <주간 고공21>을 ‘창간’했다. 평택 송전탑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한상균·복기성·문기주)이 내려온 뒤부터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최병승·천의봉)과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오수영·여민희)이 착륙할 때까지 매주 글로 동행했다. 고공의 노동자들이 <주간 고공21>의 편집위원들이 돼 지면을 궁리했다. 나는 궁리를 기획으로 옮기고, 하늘 사이의 소통을 맡고, 기사를 쓴 담당 기자였다. ‘폐간을 고대’하며 만든 <주간 고공21>은 3곳의 하늘이 해소된 다음주 ‘자진폐간’ 했다.
2014년 12월 하늘은 다시 빽빽해졌다. 씨앤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광고탑(12월24일 기준 43일째)에 올랐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3번째 하늘살이(12일째)를 시작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선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가 212일째 굴뚝에 홀로 있다. <한겨레21>은 12월22일 발행된 잡지에서 <주간 고공21>을 복간했다. 독자들에게 ‘폐간을 앞당겨 달라’고 호소했다. 고공농성자들로 빈틈없는 하늘에 다시 여백이 생길 때까지 <주간 고공21>의 폐간은 유예된다.
밥은 차갑고 봄은 멀다. 칼날 추위는 점점 날을 갈고, 고드름은 송곳이 돼 찌른다. ‘주간’은 느리고, 하늘은 급변한다. 이 공간은 개인의 페북이지만 <주간 고공21>의 속도와 내용을 보완하는 보조 매체다. 주간지 속도의 공백을 메우고 주간지가 분량의 한계로 붙들지 못한 내용을 채우려고 한다. 이곳을 밑돌 삼아 <한겨레21> 페북이 전하는 고공의 소식도 정리될 것이다. 속도에 무능한 자가 페북을 빌린다고 몇 자를 더 빨리 전할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한국의 하늘에 맑고 화창하기만 했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핍진한 삶의 시간과 비례해 하늘은 늘 붐볐다. 고맙게도 페북에 <굴뚝일보>가 생겨 주었다. 하늘을 걱정하는 이들 모두가 벌이는 ‘치열한 폐간경쟁’을 소망한다.
12월22일, 24일 서울 광화문광장 고공농성장
저 하늘에 ‘고요한 밤’은 없다.
12월22일 노동건강연대 소속 의사 최규진씨가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러 하늘에 오를 때 나도 동행했다. 고공농성 41일째 날이었다.
임정균씨는 방광염을, 강성덕씨는 어깨통증을 호소했다. 두 사람 모두 어지럼증이 심했다. 가끔 1~2초씩 의식을 놓는다고 했다. 광고탑 위엔 10개의 환풍기 덮개가 검은 삿갓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의식이 가라앉을 때 환풍기 덮개를 잘못 밟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의사는 걱정했다. 임정균씨에겐 호흡곤란 증상이 새로 발견됐다.
강성득씨는 광고탑 아래를 내려다보며 동료들에게 미안해했다. 이날 광고탑 아래에선 지부장과 동료 노동자들 20여명이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었다. 20명 중 10명은 그가 해고당한 씨앤앰 협력업체 동료들이다. “내가 여기 올라와서 내 동료들이 밥을 끊는다”며 “하늘에서 바라만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그 농성장을 이날 오후 경찰이 강제철거했다.
30여m 광고탑은 하늘이면서 땅이었다. 두 노동자를 하늘에 가둔 광고탑이 씨앤앰 대주주(MBK파트너스)가 깃든 빌딩(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과 주변 고층빌딩 사이에서 움푹 꺼진 땅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두 노동자가 올라가야 할 고공은 30m가 다가 아닐지도 몰랐다. 12월24일 노동자의 가족들이 광고탑 아래 모여 대주주에게 ‘해결’을 호소했다.
임정균·강성득씨가 몸을 누인 광고탑 안은 사방 벽이 회로판으로 도배돼 있었다. 그 복잡한 회로들이 작동해 광고판은 눈부시게 번쩍였다. 세계를 휘황하게만 만드느라 어느 회로들이 심하게 꼬여버린 2014년의 하늘. 그 하늘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은 없다.
12월22일, 24일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고공농성장
그는 212일(12월24일 기준)을 홀로 하늘에 매달려 있습니다.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굴뚝에서 외롭지 않으려고 하루 3~4시간씩 운동합니다. 공부시간과 자유시간도 시간표에 맞춰 꼬박꼬박 지킵니다.
인간의 말을 잊어버릴까 그는 저무는 해에게 말을 겁니다. 굴뚝에 내린 눈으로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동무 삼습니다. 겨울 날씨를 버티는 여린 풀잎을 부러워하며 그도 끝내 한파를 견디어 냅니다.
그가 굴뚝에서 내려다보는 스타케미칼은 텅텅 비어 있습니다. 지난 5월26일 공장 문을 닫고 회사와 직원들은 공장을 떠났습니다. 스타케미칼이 옛 한국합섬(차 대표와 해복투 노동자들의 옛 회사)을 인수한 지 2년도 안 됐을 때입니다. 그는 스타케미칼 모기업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이튿날 새벽 굴뚝에 올랐습니다. 세 계절이 지나는 동안 그의 얼굴도 바뀌고 있습니다.
12월24일 저녁 전화기 저편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표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장모님이 서울에서 암투병 중이신데 구미에서 저를 지키고 있습니다. 평일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올라가서 장모님 병간호를 합니다. 저는 늘 부재중이었습니다. 언제나 제 대신 집을 지켰습니다. 지금까지는 노동조합 한다는 이유로 같이 보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가면 가능한 시간을 다 짜내 온 마음으로 위로하겠습니다.”
굴뚝 아래를 지키고 있는 든든한 뿌리이자 길동무(부인)에게 그가 보내는 크리스마스 인사였습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 월요일 발행하는 <한겨레21>제1043호(2015년 1월5일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옆 광고탑에 오른 씨앤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한겨레 이정용.
한국의 하늘에 맑고 화창하기만 했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핍진한 삶의 시간과 비례해 하늘은 늘 붐볐다. 고맙게도 페북에 <굴뚝일보>가 생겨 주었다. 하늘을 걱정하는 이들 모두가 벌이는 ‘치열한 폐간경쟁’을 소망한다.
강성덕(왼쪽)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옆 전광판에서 30일째 고공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돼 노동건강연대 최규진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의 모습. 차광호 페이스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