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죄송합니다.
이번호 특집 ‘일본보다 미운 당신의 침묵’을 읽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담배 한 개비로는 분함을 삭이지 못할 것 같아서 난생 처음 편지를 씁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한 지 1년 정도 되는 사회 초년생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지금까지와 다른 문화와 배경 속에서 점점 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익숙해져갑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월급이 얼마고 주식은 어떻고 전세는 어떻고 결혼은 언제하는 것이 좋고, 이런 정말 더이상 개인적일 수 없는 일들이 주요한 관심이 되어갑니다. 그러던 중 이 기사를 읽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보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나라에 살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내 아이나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에게 회의없이 조국을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지 조그만 실천방안을 알려주십시오. 기사를 쓴 김소희 기자님. 기회가 돼서 먼 이국땅에서 이번 일로 일하는 분들을 만나거든 한국의 한 청년이 정말 감사해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 정말 고개숙여 감사해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할머니들을 보거든 한국의 4천만 못난이 중 한명이 정말 고개숙여 죄송해하더라고 전해주십시오.
정재철/ chul@dwmc.co.kr
한약학과 학생들의 투쟁을 보며 이번호 ‘마이너리티’에서 한약학과 학생들에 대해 다룬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자가 지적한 한약학과의 태생적 문제에 동감한다. 그러나 한약학과가 어떤 과인가에 대해서는 기자가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약사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약사의 임의조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약사가 임의조제를 하는 것은 임의진료와 같은 것이다. 국가가 면허라는 제도를 만들어 의료인에게만 진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임의진료가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한약사도 한약을 한의사의 처방으로 지어야 하는 신분이다. 100여개의 처방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임의조제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의·약에 대한 왜곡이 의약분업의 실행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는데, 지금 한약학과 학생들이 극단적인 폐과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게 ‘한국의 패치 애덤스’가 되어 임의조제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들이 환자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한약학과가 아닌 의대나 한의대에 편입하여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한약사’이지 패치 애덤스와 같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범철/ 인터넷 독자 시장바닥 같은 서울, 휠체어맨의 고생 이번호 기자가 뛰어든 세상 장애인 체험편을 보니, 장애인들의 고충을 알 만합니다. 한겨레신문사조차도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지 않다니, 좀 의외였습니다. 서울이란 데가 마치 시장바닥과 비슷해서 정상인도 돌아다니기가 불편하니, 장애인들은 집안에 가만히 있는 게 나을 만큼 험하지요.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대학마저 장애학생을 위해 이렇다 할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러니, 한국의 대학이 학문탐구의 장이라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빨리 개선돼야겠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선배에게 배신당하다”는 소제목은 무척 유머스러웠습니다. 덩치가 커다랗다는 김창석 기자 말입니다. 요번에 좀 당황했나요? 인터넷 독자 아프게 다가온 선생님의 시위 잡지를 펼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난이 ‘세상보기’입니다. 처음 보게 되어서 그런지 한호를 다 읽을 때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호 세상보기는 더욱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공교육 정상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의 교육은 구제불능이었습니다.식민지와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오면서 왜곡된 교육제도도 서글프지만 지금 시점에서 교육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정말 기성세대가 받아온 교육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아이들의 작은 꿈을 짓밟는 짓이니까요. 이주희/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독자만화
한약학과 학생들의 투쟁을 보며 이번호 ‘마이너리티’에서 한약학과 학생들에 대해 다룬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자가 지적한 한약학과의 태생적 문제에 동감한다. 그러나 한약학과가 어떤 과인가에 대해서는 기자가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약사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약사의 임의조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약사가 임의조제를 하는 것은 임의진료와 같은 것이다. 국가가 면허라는 제도를 만들어 의료인에게만 진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임의진료가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한약사도 한약을 한의사의 처방으로 지어야 하는 신분이다. 100여개의 처방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임의조제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의·약에 대한 왜곡이 의약분업의 실행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는데, 지금 한약학과 학생들이 극단적인 폐과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게 ‘한국의 패치 애덤스’가 되어 임의조제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들이 환자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한약학과가 아닌 의대나 한의대에 편입하여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한약사’이지 패치 애덤스와 같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범철/ 인터넷 독자 시장바닥 같은 서울, 휠체어맨의 고생 이번호 기자가 뛰어든 세상 장애인 체험편을 보니, 장애인들의 고충을 알 만합니다. 한겨레신문사조차도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지 않다니, 좀 의외였습니다. 서울이란 데가 마치 시장바닥과 비슷해서 정상인도 돌아다니기가 불편하니, 장애인들은 집안에 가만히 있는 게 나을 만큼 험하지요.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대학마저 장애학생을 위해 이렇다 할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러니, 한국의 대학이 학문탐구의 장이라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빨리 개선돼야겠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선배에게 배신당하다”는 소제목은 무척 유머스러웠습니다. 덩치가 커다랗다는 김창석 기자 말입니다. 요번에 좀 당황했나요? 인터넷 독자 아프게 다가온 선생님의 시위 잡지를 펼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난이 ‘세상보기’입니다. 처음 보게 되어서 그런지 한호를 다 읽을 때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호 세상보기는 더욱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공교육 정상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의 교육은 구제불능이었습니다.식민지와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오면서 왜곡된 교육제도도 서글프지만 지금 시점에서 교육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정말 기성세대가 받아온 교육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아이들의 작은 꿈을 짓밟는 짓이니까요. 이주희/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독자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