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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7 18:09 수정 :
함규원 ‘아직 잘 모르겠다’ 하련다
연재 ‘고경태의 1968년 그날’에 나온 발음하기도 힘든 외국 사람·지명을 흘려 읽을 수 없었다. 또박또박 읽었다. 그게 익명으로 존재하던 주검들의 이름을 밝히고 싶었던 고경태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의 노고에 답하는 길인 듯했다. 이제야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가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연재를 시작할 때 화두는 ‘왜 하필 1968년인가’였다. 답을 찾았다고 말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답을 찾았다고 말해버리면, 이 고민들을 던져버리고 이내 잊어버릴까봐 두려워서,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민경 구체적 대안 반가워
표지이야기는 성폭력 고소 사건에서 ‘피해자가 피해자스러워야’ 무고 혐의를 받지 않으며 조사받을 수 있는 현실을 드러냈다. 피해자임에도 공격받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피해를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피해자로 대해줄 순 없는 걸까. 격렬히 저항하지 않아도, 전과가 있어도, 이혼을 했어도 피해자는 피해자다. 최근의 <한겨레21> 기사가 반가운 이유는 대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꽃뱀으로 오해받는 이들을 위해 성폭력 재판 동행 활동을 제안했다. 비판의 날만 세우기보다 대안을 알리고 실천을 이끄는 <한겨레21>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더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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