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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모님, 전 이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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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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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광고회사 AE 이동하씨

“그 사람은 거의 ‘달인’의 경지예요.” 지난주 이주의 독자였던 권투 마니아 이건목씨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보다 더 권투에 ‘미친’ 사람이고 <한겨레21> 열성 팬이기도 해서 자주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건목씨는 이 ‘달인’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자극해 놓고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연락처를 내밀었다.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광고회사 ‘에프씨비 한인’의 AE로 일하고 있는 이동하(30)씨는 한달에 20만∼30만원을 외국 권투 비디오 수집에 투자한다. 어릴 적,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집에서 권투전문 잡지 재고를 가져다보면서 그의 수집벽은 시작됐다. 권투의 역사에 대해선 웬만한 전문가도 그의 식견을 따라오지 못한다. 왜 그렇게 권투가 좋은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그 질문은 그를 점지해준 삼신할머니에게나 해야 할 것 같다. 레너드 같은 테크니션보다는 헌스 같이 파괴력 있는 선수를 특히 좋아한단다.

이씨가 <한겨레21>을 읽기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대학 시절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비판적인 시각으로 나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시사지를 찾았죠.” 그가 특히 인상깊게 읽었던 기사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관련 기사들이었다. 그런 기사를 다룰 수 있는 용기를 높이 산다고. 권투 마니아인 만큼 <한겨레21>에 바라는 점도 소수의 마니아가 관심 갖는 특이한 분야들을 많이 다뤄 달라는 것이다.

광고회사 AE는 새벽별 보며 퇴근할 때가 많은 직업이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려면 거의 한달 동안 야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이 기획한 광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회사 정수기 광고. 타사 제품의 단점과 비교하며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했던 이 광고는 보기 드문 ‘비교광고’라는 점에서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광고에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전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있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이씨의 열정은 권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몸부림’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대학 4학년 때 소설부문 학교 문학상을 탈 정도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했고, 얼마 전까지 인터넷 영화동호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동호회에서 그는 평생을 같이하고픈 여성을 만났다. 지금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며칠 뒤 장인, 장모님에게 ‘면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지면에 장모님께 드리는 말씀을 남겨야죠”라고 하자, 한참을 머뭇거린다. “카피가 잘 안 뽑히는데요.” 중견 AE도 이런 ‘카피’를 뽑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고심을 거듭하다 다음날 이메일로 보낸 문구는 어이없을 만큼 단순했다. “미래의 장모님. 어서 빨리 장모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카피가 장모님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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