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이건목씨
이건목(34)씨는 요즘 전에 없이 집이 좁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96년부터 모아온 <한겨레21>이 이제는 처치곤란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느라 전공서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한겨레21>만은 꿋꿋이 보관해왔다. 아내가 이젠 좀 버리라고 채근을 해도 계속 고집을 피워왔다. 앞으로도 수집할 생각이냐고 묻자, 이런 시원스런 대답이 날아온다. “그럼요.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어요. 나중에 아들이 크면 아빠가 사는 시대는 이랬다고 보여줘야죠!”
이씨가 <한겨레21>을 정기구독한 이유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좀 깊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들이 다루기 꺼려 하는 성역을 과감하게 다루는 점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최근에 가장 기억남는 기사는 376호 표지이야기 ‘햄버거의 독백’이다. 패스트푸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아는 사람들과 돌려보며 토론까지 했단다.
그는 지금 ‘신성통상’이라는 의류회사에서 백화점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외국 브랜드가 판을 치는 마당에 순수 국산 브랜드로 승부를 걸다보니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래도 차차 브랜드 인지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백화점 영업을 하다보니 언론의 잘못된 시각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경제가 조금만 침체되면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들을 비추며 과소비 행태를 비판하는 게 언론의 뻔한 레퍼토리다. 그런 기사가 한번 뜨면 백화점 매출이 크게 떨어져서 영업사원들이 애를 태운다는 사실은 언론이 알지 못한다. 백화점에는 열악한 근무여건을 이겨내며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씨는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피상적인 비판만 해대는 것은 언론의 도리가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씨에게는 소박하지만 좀 엉뚱한 꿈이 하나 있다. 그건 40대가 되기 전에 복서로 데뷔전을 치르는 것이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해 체육교육과를 선택한 그는 학창 시절 럭비팀 일원으로 활약했다. 어느 비오는 날,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팀이 첫 승리를 거둔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운동은 권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복싱 마니아였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인터넷 권투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해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권투의 역사와 기술에 대해 이론으로는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하루라도 빨리 실전에 뛰어들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이 ‘철없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근심이 쌓여가겠지만 아들 이병근(4)군은 행복할 것 같다. 집안 가득 쌓인 <한겨레21>과 아버지의 데뷔전은 평생 동안 간직할 선물이기 때문이다. 기왕 잡지를 물려주는 김에 아들에게 전하는 말도 남겨달라고 부탁하자 이씨는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말했다. “병근아, 하고 싶은 걸 해라. 아빠가 항상 도와줄게.”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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