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고 노래 듣고
등록 : 2014-05-19 14:54 수정 :
날씨가 좋다. 여느 봄날보다 봄스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나들이, 소풍하기 좋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한 달 전에 발생해 우리를 슬픔의 도가니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떠올라 미안하고 부끄럽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놀면 안 될 것 같은데 또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 아이돌 음악부터 인디밴드 음악까지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장르가 아니라 장소다. 따뜻한 봄날, 뜨거운 여름날, 서늘한 가을날 나는 밖에서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야외에서 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으면 누가 나오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매 삼매경에 빠진다.
학수고대하던 음악 페스티벌이 있었다. 집과 가까운 경기도 고양시에서 하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라는 야외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누가 나와도 반겼을 테지만 유독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몰려나와 행복한 비명을 지르던 차였다. 그런데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간을 담당하는 고양문화재단은 공연 직전 취소를 통보했다. 털썩. 왜 취소하냐고 물을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으니까. 그러나 음악가들은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노래를 통해 추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누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밖에서 하는 음악 페스티벌을 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누군가 꺼낸다면, 아마 같이 간 친구나 옆사람을 붙잡고 눈물을 함께 흘릴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음악가들이 던진 물음에 아직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그런 걸 직접 묻지도 않겠지만. 다만 떠올려본다. 우리가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모두 싸우기만 해야 하는 세상이라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슬픔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가득하다. 그것을 치유해야 하는데 하나의 길만 있을 수는 없다. 5월 말부터 다시 야외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만일 취소되지 않는다면, 올해 나의 첫 야외 페스티벌이다. 그 뒤로 거의 9월까지 매달 야외 음악 축제를 다닐 거다. 그 와중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할 거다. 그게 나의 슬픔 치유 방법이다.
사회가 잘못됐다고 소리 높이는 사람이 많다. 때로는 동의하지만, 행복을 미뤄둔 채 화내기만 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노래를 듣고 노래를 하고 싶다. 날 향해 손가락질한다면, 나는 웃어줄 것이다.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사회를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건네면서.
제로니 독자
*‘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레디 액션!